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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조석민 칼럼] 교회의 정치적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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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14-01-15 15:24 / 조회 1,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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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정치적 역할


최근 가톨릭 전주교구에서 행한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요구에 대한 시국미사에 대하여 정치권과 종교계가 각각 그 영역에서 양분되어 보수적인 목소리와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교회는 정치적 역할이 있는 것일까? 교회의 정치적 역할이 있다면 그 본질과 내용은 무엇인가? 먼저 교회의 정치적 역할의 유무를 생각해 보고 그 내용을 살펴보자. 정치란 인간이 함께 모여 사는 삶의 일부이다. 여기서 교회 공동체 자체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교회에도 교회 정치가 있다. 물론 현실 정치와 교회 정치는 서로 다른 영역이다. 하지만 정치라는 기본 개념은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 인간 사회 속에서 정치를 떠나서 살 수 없는 존재가 인간이며,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누구나 정치적 결정이나 사건들로 말미암아 그 삶에 직간접으로 크고 작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현상을 가리켜 “사람은 정치적 동물”이라고 말한 것이다.

정치와 종교의 역할이 분명하게 분리되지 않았던 구약성서 시대에 선지자들의 정치적 역할로서 예언은 종교 뿐 아니라 사회와 국가에 직간접으로 많은 영향을 주었다. 선지자들의 역할 가운데 중요한 기능이 사회와 국가의 예언자적 목소리를 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근대 국가의 개념이 성립되면서 종교와 정치의 역할과 영역은 분리되어 마치 서로 관련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종교와 정치란 한 사회와 국가 속에서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관계 속에 있다. 이런 점에서 교회와 정치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영향을 주고받기에 바울도 로마서 13:1-7에서 종교와 정치의 관계에 대해서 지극히 제한적으로 언급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은 사람들이 혐오할 상황 속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더욱이 정치인들이 공공의 이익과 개인적인 사익을 구분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교회의 정치적 역할로서 예언자적 목소리와 행동은 어느 때보다도 시급히 요청된다.

정치의 본질이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일이고, 사회 정의는 하나님이 가르치신 말씀 속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따라야 할 교훈이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가 이 사회 속에 사랑과 정의를 구현하며 평등과 평화를 실천하는 것인데, 그 수단과 방법의 한 부분이 교회 공동체 뿐 아니라, 정치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 교회가 세상 속에 존재해야 한다면, 세상 정치의 한 부분을 자연스럽게 구성하기에 교회의 정치적 역할은 필연적이다. 더욱이 정치가 사적 영역이 아니라 공적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면 교회는 공적 기관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헤아려 공정하게 정치적 역할을 공적으로 담당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전주 교구에서 행한 시국미사는 당연한 일을 교회가 실천한 것 뿐이다. 현재 이런 일들이 개신교회 안에서도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은 교회의 정치적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종교의 정치적 역할이 있기에 불교와 원불교, 천도교에서까지 정치적 목소리를 발하는 것이다.

사람의 삶에서 정치와 관련이 없는 영역은 그리 많지 않다. 예를 들면, 교회가 건물을 짓기 위하여 인허가를 받는 과정도 정치적 결과물 속에서 발생한 법 조항을 준수하는 것이다. 신혼부부가 자녀를 몇 명 나을 지에 대한 고민도 정치적 결단의 과정 속에서 육아를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에 따라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아이 낳는 것을 부부가 결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치적 요소가 상당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교회의 정치적 역할은 피할 길이 없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한국 개신교회는 교회의 정치적 역할보다는 많은 경우에 개인구원과 개인영성 추구에 몰입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단적인 예가 대부분의 교회에서 교회의 일차적 사명을 영혼구원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교회가 문화센터를 건립하고 지역 사회를 위하여 노력하며, 정치적 현실에 대하여 목소리를 발하며 역할을 감당하는 경우도 흔하진 않지만 존재한다. 교회의 사명에서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문제는 “구원”이라는 단어의 의미이다. 구원의 의미는 한 개인의 영혼이 구원받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전인격적인 한 개인의 삶과 관련된 구원인지를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 신구약성서가 가르치는 구원의 의미는 단순히 예수 믿고 죽은 후에 천국 가는 것만은 결코 아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정치적 현실을 생각하면 교회의 정치적 역할은 매우 중요하고 시급하다.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가치인 사랑과 정의, 평등과 화평을 이 땅에서 추구하는 것이라면 교회는 세상 정치를 향하여 예언자적 목소리를 높여야 한 다. 최소한 사회 정의를 실천하고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정치를 하도록 교회는 정치적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정치적 역할의 형태는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겠지만 그 어떤 형태로든지 정치적 역할을 위하여 신앙의 양심에 따라 행동해야 할 것이다. 교회가 사회 정의를 실현하지 못하는 정부와 정치인들에게 양심의 목소리를 정직하게 내 뱉지 못하면 길가의 돌들이 소리 지를 것이다. 교회는 길거리의 돌멩이 보다 못한 교회가 되지 않도록 고난을 감내할 각오 속에서 양심적인 목소리와 행동을 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 추구 가운데 최소한 사회 정의의 실현을 위하여 정치인들이 올바로 정치하도록 교회는 정치적 역할 을 감당해야 한다. 사회정의 실현이란 “재화를 공정하게 분배하고 법과 질서를 합리적인 범위 안에서 유지하며 사회 구성원들 사이의 불평등과 차별을 줄이는 것”(김영명, 『정치를 보는 눈』, p. 49)을 의미한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은 정부와 정치인들이 사회 정의를 적절하게 구현하지 못하고 있기에 교회의 정치적 역할은 더욱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여러 가지 불미스러운 일들이 우리나라 정치현실에서 회자되는 현재의 상황에서 교회가 정치적 역할을 감당하여 예언자적 목소리를 발하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교회는 생명을 담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은 단체이며, 이 땅에서 빛을 잃은 등불이며 밟히는 소금이 될 것이다.

- 이 칼럼은 바른교회아카데미 저널 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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