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백종국 칼럼] 분단 비용과 교회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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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13-04-16 11:45 / 조회 3,026 / 댓글 0본문
분단 비용과 교회 개혁
분단 상황에서 인애·공평·정직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요사이 대북 관계가 다시 긴장되면서 왜곡된 논지와 허황한 증거들을 연관 지어 교회 개혁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교회 개혁을 주장하는 사람이 종북이거나 간첩들이라고 한다. 전형적인 분단 비용의 문제이다. 분단 비용이란 한반도가 분단되지 않았으면 발생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제반 사회적 비용을 말하기 때문이다. 30년 동안 지속된 한국의 군사독재를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헌법 제1조에서 민주공화국임을 선언하고 있는 나라가 그토록 오래 군사독재를 유지했다는 사실 자체가 분단 상황이 아니고는 잘 설명되지 않는다. 교회 개혁을 촉구하는 사람들을 엉뚱하게 종북 세력으로 몰아가는 선동도 분단 상황으로 야기된 대북 히스테리가 아니면 설명하기 어렵다.
올바른 신앙과 그릇된 선동을 분별해 주는 신앙의 리트머스 시험지를 만들어 볼 수 있다. 예컨대 "대한민국의 헌법 제1조"는 민주공화국을 추구하는 진정한 보수 세력과 군사독재를 지지하는 왜곡된 수구 세력을 나누어 주는 리트머스 시험지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레미야 9장 23절에서 나오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의 실천"은 올바른 신앙과 그릇된 선동을 분별해 주는 리트머스 시험지이다.
인애와 공평과 정직은 하나님의 품성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을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품성을 최대한으로 추구해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구원의 조건은 아니지만 구원의 열매로 반드시 나타나야 한다. 복음에 합당한 열매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 우리는 그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인지를 의심할 수 있다.
백성들을 억압하고 투옥하고 고문하고 살해하는 독재자들은 인애와 공평과 정직의 정신에 어긋나는 통치자들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떤 이유로든 이 독재자들을 지지하거나 찬양하거나 고무할 수 없다. 김일성과 김정일과 김정은 또는 박정희와 전두환과 노태우를 고무하거나 찬양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답지 않다. 이러한 행위가 복음의 문을 막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욕되게 한다. 한국은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므로 말로 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고무 찬양의 방식에 따라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흔드는 범법 행위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
한국의 군사독재는 경제성장을 이룩했으니 예외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터무니없는 생각이다. 한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은 군사독재 때문이 아니라 군사독재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졌다. 전후 제3세계 100여 개국의 사례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어느 한 나라도 군사독재 때문에 망했으면 망했지 경제적으로 성장한 나라가 없다. 한국의 급속한 경제성장 요인으로 성공적 토지개혁, 높은 교육열, 미국의 대폭적 지원, 그리고 적절한 발전 전략의 네 가지를 들 수 있다. 사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경제성장을 이유로 군사독재를 지지하는 것은 민족 자주를 이유로 세습 독재를 지지하는 것만큼이나 그리스도인으로서는 삼가야 할 주장이다.
권력이나 부나 직위를 세습하는 것은 인애와 공평과 정직의 뜻에 어긋난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지으셨다. 그리고 각자에게 각자의 달란트를 주어 생업에 종사하게 하셨다. 각자는 자신이 땀 흘려 노력한 바에 합당한 소득을 얻어야 한다. 그러나 인간들은 왜곡된 제도를 만들어 권력과 부와 직위를 세습함으로써 불공정을 조장하기도 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삼가야 할 일이다. 그것이 북한 체제이든 한국 재벌이든 마찬가지이다. 교회 담임목사직의 세습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누구도 맡으려 하지 않는 미자립 교회의 사례를 악용하여 부유한 대형 교회의 세습을 정당화하려는 사람은 사람의 심중을 들여다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무소부재하심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대학의 학위를 획득하기 위해 학위논문을 표절하는 행위는 하나님의 성품에 어긋나는 행위이다. 단순히 정직하지 못할 뿐 아니라 엉덩이에서 피고름을 흘려가면서 학위논문을 썼던 사람들을 모욕하는 불공평한 일이다.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이 이러한 범죄를 저질러도 사회적 지탄과 처벌의 대상이다. 하물며 공의와 정직의 하나님을 설교하는 목사들이라면 당연히 저질러서는 안 되는 범죄이다.
문제는 한국교회가 교회 개혁을 논의해야 할 정도로 세속화와 물질주의에 물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기업들조차도 세습을 가급적 삼가는 데 일부 교회는 담임목사직의 세습을 정당화하려 애쓰고 있다. 유명 여배우는 표절 혐의가 발견되자 즉각 사과하고 스스로 학위를 취소하는데 유명 목사는 온갖 변명으로 일관하여 빈축을 사고 있다. 인애와 공평과 정직의 실천이 일반 사회보다 교회에서 더 취약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민족의 등불이었던 한국 개신교의 역사가 이들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심각한 손상을 입고 있다.
주님의 은총으로 한국 교회 일각에서 하나님의 품성을 실천하고 교회를 교회답게 하려는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과 이 운동을 모체로 발전한 다양한 직업별 주제별 운동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더 큰 범주로서 성서한국이라는 연합 조직을 만들고 있다. 이 단체들의 목적은 그 단체 자체를 성장시키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한국교회가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잘 실천하게 되어 이러한 운동이 자연스럽게 소멸되거나 불필요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교회들이라면 그 자체가 강력한 운동이므로 외부의 운동 단체가 필요치 않다.
안타까운 것은 최근의 대북 히스테리에 편승하여 이러한 복음주의적 신앙 단체들을 종북 혹은 주체사상파로 몰아가는 왜곡된 정치 선전이 발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몇몇 극우적 단체나 언론에서 이 단체의 지도자들을 북한 추종자들이며 간첩들이라고 매도하고 있다. 반공의 보루인 대형 교회를 세습이나 표절과 같은 문제로 공격한다는 게 그 이유이다. 특히 최근 강남의 어느 대형 교회에서 발생한 담임목사 표절 사건에 대한 비판을 계기로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표절이나 세습에 대한 비판을 비판할 수 없기 때문에 정치적인 종북으로 몰아가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역사상 독일의 히틀러에서부터 북한의 세습 독재에 이르기까지 혹은 이단 종파들 사이에서 이러한 왜곡된 선전은 자주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왜곡된 선전·선동은 공통적으로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사고방식이다. 선전의 목적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사용한다. 모순된 논지와 거짓 자료들을 사용하지만 반복과 세뇌를 통해 정당화한다. 둘째는 불충분한 통계의 오류를 의도적으로 활용한다. 단 하나의 사례일지라도 자신의 논지 전체를 증명한다고 강조하며 청중이 다른 객관적 정보에 접촉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는다. 셋째는 합리적 사고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예컨대 맥락에서 벗어난 성경 구절을 꾸준히 동원하면서 동의를 강요한다. 때로는 눈물까지 흘리면서… 단상에서 설파되는 말씀은 무엇이든지 아멘으로 화답해야 한다는 식의 교육을 받은 청중들이라면 이 선동에 쉽게 넘어가기 마련이다.
한반도에서 유독 왜곡된 선전·선동이 쉽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분단 상황으로 인한 심리적 압박 때문이다. 휴전하의 분단 상황에는 전쟁의 위기가 상존하고 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때에는 무엇이 옳으냐 그르냐를 따질 여유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거의 모든 독재 체제는 이러한 상황을 만들어 내려고 노력한다. 체제의 정통성과 정당성에 대한 의문을 생존의 문제로 덮으려는 전략이다. 현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권을 잡은 자들이 추구하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정치 전략이다.
민주 사회라면 해군기지의 조성이나 키 리졸브 혹은 팀 스피리트와 같은 한미 군사훈련에 대하여 찬반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어느 국가나 국가 안보를 위해 군사기지를 설치하고 동맹국과 군사훈련을 한다. 문제는 또다시 분단 상황이다. 예컨대 한국이 브라질과 남미에서 합동 군사훈련을 한다면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이 야기될 리가 없다. 그러나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한반도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우리 측에서 먼저 대대적인 군사훈련을 실시하면서 이에 대한 북측의 대응을 빙자하여 다시 대북 히스테리를 조성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러한 이유로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강조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정부가 이 문제에 더욱 신중하기를 원하고 있다. 물론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질 수도 있다. 따라서 무조건 찬성하면 애국자이고 그렇지 않으면 간첩이라는 주장은 우스꽝스러운 억지이다.
한국인들, 특히 인애의 하나님을 믿는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북한 지역에 거주하는 동포들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기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한민족이면서도 가혹한 세습 독재에 시달리는 모습이 애처롭다. 북한 동포들의 인권과 복지, 민주적 체제 구성을 위해 남한 동포들이 애써야 한다. 그러나 이는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와 비슷하다. 무조건적 지원을 강조하는 투항주의나 실현 불가능한 조건을 고집하는 정복주의는 어느 쪽이나 공평과 정직을 원하는 주님의 뜻과 맞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북한에 비해 훨씬 우세한 위치에 있다. 민주주의 체제를 채택하고 있어서 국민의 충성이 자발적이다. 적국에 대한 적대감을 유달리 고취할 필요가 없다. 한국은 전후 제3세계에서 가장 빨리 경제성장을 이룩한 나라이다. 주관적 만족도는 어떨지 모르지만 객관적 지표로 볼 때 북한과 비교할 수 없다. 군사력에 있어서도 한국이 북한보다 우세하다는 것이 국제적 평가이다. 전 세계가 인정하는 바 남북한 관계의 주도권은 이미 남한 측으로 넘어와 있다.
한국 사회는 이제 양적 발전에서 질적 발전을 추구하는 선진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그만큼 정직성과 투명성과 공정성이 강조되고 있다. 유달리 이때에 공직 후보자 검증이 강화되고 표절 시비가 많이 발생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이러한 때를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다. 하나님의 품성을 앞장서서 실천함으로써 민족의 새로운 등불이 될 수 있다. 혹시라도 이 역사적 행진에 낙후됨으로써 하나님과 민족에게 버림받는 처지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역사적 부르심을 위해 효율적인 교회 개혁 운동이 꼭 필요하다. 문제는 분단 상황에서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어떻게 실천하느냐 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역사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올바른 이해와 창조적 대응이 절실하다.
백종국 / 경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원문보기)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193936
분단 상황에서 인애·공평·정직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요사이 대북 관계가 다시 긴장되면서 왜곡된 논지와 허황한 증거들을 연관 지어 교회 개혁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교회 개혁을 주장하는 사람이 종북이거나 간첩들이라고 한다. 전형적인 분단 비용의 문제이다. 분단 비용이란 한반도가 분단되지 않았으면 발생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제반 사회적 비용을 말하기 때문이다. 30년 동안 지속된 한국의 군사독재를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헌법 제1조에서 민주공화국임을 선언하고 있는 나라가 그토록 오래 군사독재를 유지했다는 사실 자체가 분단 상황이 아니고는 잘 설명되지 않는다. 교회 개혁을 촉구하는 사람들을 엉뚱하게 종북 세력으로 몰아가는 선동도 분단 상황으로 야기된 대북 히스테리가 아니면 설명하기 어렵다.
올바른 신앙과 그릇된 선동을 분별해 주는 신앙의 리트머스 시험지를 만들어 볼 수 있다. 예컨대 "대한민국의 헌법 제1조"는 민주공화국을 추구하는 진정한 보수 세력과 군사독재를 지지하는 왜곡된 수구 세력을 나누어 주는 리트머스 시험지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레미야 9장 23절에서 나오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의 실천"은 올바른 신앙과 그릇된 선동을 분별해 주는 리트머스 시험지이다.
인애와 공평과 정직은 하나님의 품성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을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품성을 최대한으로 추구해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구원의 조건은 아니지만 구원의 열매로 반드시 나타나야 한다. 복음에 합당한 열매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 우리는 그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인지를 의심할 수 있다.
백성들을 억압하고 투옥하고 고문하고 살해하는 독재자들은 인애와 공평과 정직의 정신에 어긋나는 통치자들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떤 이유로든 이 독재자들을 지지하거나 찬양하거나 고무할 수 없다. 김일성과 김정일과 김정은 또는 박정희와 전두환과 노태우를 고무하거나 찬양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답지 않다. 이러한 행위가 복음의 문을 막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욕되게 한다. 한국은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므로 말로 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고무 찬양의 방식에 따라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흔드는 범법 행위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
한국의 군사독재는 경제성장을 이룩했으니 예외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터무니없는 생각이다. 한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은 군사독재 때문이 아니라 군사독재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졌다. 전후 제3세계 100여 개국의 사례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어느 한 나라도 군사독재 때문에 망했으면 망했지 경제적으로 성장한 나라가 없다. 한국의 급속한 경제성장 요인으로 성공적 토지개혁, 높은 교육열, 미국의 대폭적 지원, 그리고 적절한 발전 전략의 네 가지를 들 수 있다. 사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경제성장을 이유로 군사독재를 지지하는 것은 민족 자주를 이유로 세습 독재를 지지하는 것만큼이나 그리스도인으로서는 삼가야 할 주장이다.
권력이나 부나 직위를 세습하는 것은 인애와 공평과 정직의 뜻에 어긋난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지으셨다. 그리고 각자에게 각자의 달란트를 주어 생업에 종사하게 하셨다. 각자는 자신이 땀 흘려 노력한 바에 합당한 소득을 얻어야 한다. 그러나 인간들은 왜곡된 제도를 만들어 권력과 부와 직위를 세습함으로써 불공정을 조장하기도 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삼가야 할 일이다. 그것이 북한 체제이든 한국 재벌이든 마찬가지이다. 교회 담임목사직의 세습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누구도 맡으려 하지 않는 미자립 교회의 사례를 악용하여 부유한 대형 교회의 세습을 정당화하려는 사람은 사람의 심중을 들여다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무소부재하심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대학의 학위를 획득하기 위해 학위논문을 표절하는 행위는 하나님의 성품에 어긋나는 행위이다. 단순히 정직하지 못할 뿐 아니라 엉덩이에서 피고름을 흘려가면서 학위논문을 썼던 사람들을 모욕하는 불공평한 일이다.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이 이러한 범죄를 저질러도 사회적 지탄과 처벌의 대상이다. 하물며 공의와 정직의 하나님을 설교하는 목사들이라면 당연히 저질러서는 안 되는 범죄이다.
문제는 한국교회가 교회 개혁을 논의해야 할 정도로 세속화와 물질주의에 물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기업들조차도 세습을 가급적 삼가는 데 일부 교회는 담임목사직의 세습을 정당화하려 애쓰고 있다. 유명 여배우는 표절 혐의가 발견되자 즉각 사과하고 스스로 학위를 취소하는데 유명 목사는 온갖 변명으로 일관하여 빈축을 사고 있다. 인애와 공평과 정직의 실천이 일반 사회보다 교회에서 더 취약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민족의 등불이었던 한국 개신교의 역사가 이들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심각한 손상을 입고 있다.
주님의 은총으로 한국 교회 일각에서 하나님의 품성을 실천하고 교회를 교회답게 하려는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과 이 운동을 모체로 발전한 다양한 직업별 주제별 운동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더 큰 범주로서 성서한국이라는 연합 조직을 만들고 있다. 이 단체들의 목적은 그 단체 자체를 성장시키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한국교회가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잘 실천하게 되어 이러한 운동이 자연스럽게 소멸되거나 불필요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교회들이라면 그 자체가 강력한 운동이므로 외부의 운동 단체가 필요치 않다.
안타까운 것은 최근의 대북 히스테리에 편승하여 이러한 복음주의적 신앙 단체들을 종북 혹은 주체사상파로 몰아가는 왜곡된 정치 선전이 발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몇몇 극우적 단체나 언론에서 이 단체의 지도자들을 북한 추종자들이며 간첩들이라고 매도하고 있다. 반공의 보루인 대형 교회를 세습이나 표절과 같은 문제로 공격한다는 게 그 이유이다. 특히 최근 강남의 어느 대형 교회에서 발생한 담임목사 표절 사건에 대한 비판을 계기로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표절이나 세습에 대한 비판을 비판할 수 없기 때문에 정치적인 종북으로 몰아가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역사상 독일의 히틀러에서부터 북한의 세습 독재에 이르기까지 혹은 이단 종파들 사이에서 이러한 왜곡된 선전은 자주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왜곡된 선전·선동은 공통적으로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사고방식이다. 선전의 목적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사용한다. 모순된 논지와 거짓 자료들을 사용하지만 반복과 세뇌를 통해 정당화한다. 둘째는 불충분한 통계의 오류를 의도적으로 활용한다. 단 하나의 사례일지라도 자신의 논지 전체를 증명한다고 강조하며 청중이 다른 객관적 정보에 접촉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는다. 셋째는 합리적 사고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예컨대 맥락에서 벗어난 성경 구절을 꾸준히 동원하면서 동의를 강요한다. 때로는 눈물까지 흘리면서… 단상에서 설파되는 말씀은 무엇이든지 아멘으로 화답해야 한다는 식의 교육을 받은 청중들이라면 이 선동에 쉽게 넘어가기 마련이다.
한반도에서 유독 왜곡된 선전·선동이 쉽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분단 상황으로 인한 심리적 압박 때문이다. 휴전하의 분단 상황에는 전쟁의 위기가 상존하고 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때에는 무엇이 옳으냐 그르냐를 따질 여유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거의 모든 독재 체제는 이러한 상황을 만들어 내려고 노력한다. 체제의 정통성과 정당성에 대한 의문을 생존의 문제로 덮으려는 전략이다. 현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권을 잡은 자들이 추구하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정치 전략이다.
민주 사회라면 해군기지의 조성이나 키 리졸브 혹은 팀 스피리트와 같은 한미 군사훈련에 대하여 찬반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어느 국가나 국가 안보를 위해 군사기지를 설치하고 동맹국과 군사훈련을 한다. 문제는 또다시 분단 상황이다. 예컨대 한국이 브라질과 남미에서 합동 군사훈련을 한다면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이 야기될 리가 없다. 그러나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한반도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우리 측에서 먼저 대대적인 군사훈련을 실시하면서 이에 대한 북측의 대응을 빙자하여 다시 대북 히스테리를 조성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러한 이유로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강조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정부가 이 문제에 더욱 신중하기를 원하고 있다. 물론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질 수도 있다. 따라서 무조건 찬성하면 애국자이고 그렇지 않으면 간첩이라는 주장은 우스꽝스러운 억지이다.
한국인들, 특히 인애의 하나님을 믿는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북한 지역에 거주하는 동포들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기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한민족이면서도 가혹한 세습 독재에 시달리는 모습이 애처롭다. 북한 동포들의 인권과 복지, 민주적 체제 구성을 위해 남한 동포들이 애써야 한다. 그러나 이는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와 비슷하다. 무조건적 지원을 강조하는 투항주의나 실현 불가능한 조건을 고집하는 정복주의는 어느 쪽이나 공평과 정직을 원하는 주님의 뜻과 맞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북한에 비해 훨씬 우세한 위치에 있다. 민주주의 체제를 채택하고 있어서 국민의 충성이 자발적이다. 적국에 대한 적대감을 유달리 고취할 필요가 없다. 한국은 전후 제3세계에서 가장 빨리 경제성장을 이룩한 나라이다. 주관적 만족도는 어떨지 모르지만 객관적 지표로 볼 때 북한과 비교할 수 없다. 군사력에 있어서도 한국이 북한보다 우세하다는 것이 국제적 평가이다. 전 세계가 인정하는 바 남북한 관계의 주도권은 이미 남한 측으로 넘어와 있다.
한국 사회는 이제 양적 발전에서 질적 발전을 추구하는 선진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그만큼 정직성과 투명성과 공정성이 강조되고 있다. 유달리 이때에 공직 후보자 검증이 강화되고 표절 시비가 많이 발생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이러한 때를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다. 하나님의 품성을 앞장서서 실천함으로써 민족의 새로운 등불이 될 수 있다. 혹시라도 이 역사적 행진에 낙후됨으로써 하나님과 민족에게 버림받는 처지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역사적 부르심을 위해 효율적인 교회 개혁 운동이 꼭 필요하다. 문제는 분단 상황에서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어떻게 실천하느냐 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역사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올바른 이해와 창조적 대응이 절실하다.
백종국 / 경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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