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만열 인터뷰] 한국교회, 무엇을 남기고 사라질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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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13-03-25 16:23 / 조회 3,062 / 댓글 0본문
봄기운이 사라락거리는 한 낮, 이만열 교수의 필운동 자택을 찾았다.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서둘러 부엌으로 들어간 이 교수는 익숙한 솜씨로 어린 객을 위해 차를 준비했고, 어르신의 분주한 모습에 안절부절 하던 기자는 그윽한 커피 향이 피어오를 때에야 한 숨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이 교수는 얼마 전부터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고 했다. “기억력에 좋다고 해서”다. 하기야, 요즘같이 역사에 대한 망각과 망언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때엔 또렷한 기억과 제대로 된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역사학자의 책임이 더 무거울 법 하다. 5. 16에 대한 장관 후보자들 얘기다. 일본의 역사 왜곡에 질릴 대로 질려있는 우리나라 국민인데, 불과 몇 십년 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 대답할 수 없다고 하니 기가 차다. 그만큼 시절이 하 수상하다. 이러한 때 넓은 안목과 깊은 통찰을 제시하는 이 교수의 페이스북 글은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 지난해 말부터 SNS 세상에 접속했다는 이 교수는 수개월만에 페이스북 친구가 수용한계에 이르렀다. 잠시 회의가 들어 몇 주 빠트리긴 했지만, 매주 한 편 씩 담벼락에 글을 올리고 있다. 그리고 이 교수는 3월 초부터는 해방 이후의 한국기독교를 조망하는 역사 강좌를 시작했고, 신사참배 반대 자료집 발간을 위해서도 시간을 쪼개고 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역사학자로서 끊임없이 역사를 조명하고 밝히며 미래를 바라보는 혜안을 제시하는 이 교수에게 물었다. 하 수상한 시절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얼마 전 김동호 목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보고, 신사참배 자료집 발간을 준비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목표한 금액이 금세 달성됐다고 들었는데, 자료집에서 다루는 내용이 궁금하다.
신사참배에 대한 총체적인 내용을 담은 자료집이 없다. 미국 선교사들이 선교 본부에 신사참배 문제에 대해 보고한 문서들과, 한국에 있던 미 영사관에서 국무성에 보고한 문건들을 책으로 엮은 건 영문판으로 나와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이 직접 관련돼 있거나 어떤 사건에 대해 일본 총독부가 압력을 가해 재판을 했다는 자료집 등은 정리가 되어 있지 않다. 신사참배와 관련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재판기록이나 경찰조서, 여러 곳에서 보도한 자료들이 묶여있지 않아서 신사참배 문제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비록 내가 그 분야 전공자는 아니지만 어느 학술발표회에서 있을 신사참배에 대한 발표를 준비를 하면서 자료가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지 않은 사실을 확인하게 됐다. 그래서 자료집의 필요성이 느껴졌다. 황당한 것은 지금까지 한국교회가 신사참배를 반대했었다는 역사적인 명분을 축적해왔는데 후손들이 선진들의 행적을 정리해 놓지 않았다고 하는 거다. 이건 부끄러운 일이다. 이 분야 전문가에게 물어보니 자료집을 만들면 대략 3권 정도의 분량이 나온다고 한다. 신문과 잡지, 일본에 있는 문서들을 다 찾아서 번역까지 하면 책으로 나오는 데까지 3년 정도 소요될 예정이다. 내가 모금했던 비용보다 더 많은 금액이 필요하지만, 돈을 다 모을 때까지 기다리면 시작도 못할 것 같아서 일단 5천만원 모금 요청을 했었고 고맙게도 많은 분들이 동참해 주셨다.
이런 일은 직접 페북을 통해 알려도 됐을 것 같은데.
내가 보훈처 산하의 사단법인 산돌손양원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 있다. 자료집을 만들자고 이사회에 제안을 했는데 모금 문제 등으로 반응이 적극적이지가 않아서 일단 내가 팔을 걷어붙였다. 그래서 김 목사님을 찾아갔고 좋게 생각해주셔서 결과도 좋았다. 나는 페북 통해서 모금하고 이런 걸 해보질 않았던데다, 모금하는데 재주가 없는 사람이다.
지난해 말 페북에 가입한 이후 꾸준히 글을 올리며 견해를 밝혀오고 있다. 페친도 많은데 그들과 SNS를 통해 교류하는 느낌이 어떤지 궁금하다.
난 페북이나 트위터를 잘 몰랐다. 지난해 대선 후에 젊은 분들하고 모임을 가진 적이 있는데 우리 사회 안에서 공유하고 전달해야 할 가치가 있다는 얘기를 나눴다. 나는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신문 기고를 통해 입장을 밝혀 왔다. 그런데 후배들이 SNS를 소개해주면서, 의견을 표출하는게 신문보다 더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사실 지금도 내 글을 올리는 것 외에는 다른 건 모른다. 지난해 12월부터 글을 올리다가 최근에 두 주 정도 쉰 적이 있다. 너무 고민스러웠다. 내가 여기에 이런 글을 쓴다고 해서 어떤 효과나 감흥도 없다면 굳이 쓸 필요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사야 선지자나 바울 사도가 외쳤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라는 심경과도 비슷했다. 그러다가 나 같은 사람의 얘기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해서 의기소침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내 친구 손봉호 교수가 구약 선지자들이 자신의 예언이 이루어지지 않을 줄 알면서도 외치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을 '선지자적 비관'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내가 선지자는 아니지만. 암튼 요즘 용기를 내서 조금씩 쓰고 있다.
역사학자로서 볼 때 선지자적 비관은 계속될 것 같다. 지난 정부에 이어 지금까지 역사 왜곡 발언이 이어져오는 것 같다.
국무총리가 5. 16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피력한 적이 있은 후 지시가 내려온 것 같다. 5.16에 대한 소신을 피력하지 말라고. 아니면 눈치를 보고 있거나. 그런데 이게 역사 왜곡이다. 교과서에서 5.16은 군사정변, 쿠데타라고 되어 있는데 그걸 가르쳐야 할 교과부 장관도 제대로 된 답을 못한다는 건 앞으로 우리 역사가 얼마나 더 왜곡될 지 우려되는 대목이다. 정치가 역사를 좌지우지 하지 않아야 된다. 그건 역사가들의 몫이다. 정권의 신념과 맞지 않다고 해서 제동을 걸고 왜곡된 역사를 가르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역사를 보는 관점이 뒤틀려 있는 것이 식민지 시대에 일제가 우리나라를 근대화시켰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고 있는 뉴라이트의 역사관이다. 일제가 총칼로 사람들을 위협하면서 철도 놓고 도로 닦은 걸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에 일제가 근대화를 시켰다고 하다면, 그 시절에 독립운동하고 나라를 찾기 위해 일제에 저항한 행동은 반역적인 일이 되는 것 아닌가. 이명박 정권이 잘못한 게 많지만 그 중 하나는 뉴라이트 역사관을 반영해 근현대사를 왜곡한 것이다. 이 일에 대해서는 분명히 기록해 놓아야 한다.
뉴라이트 얘기를 하면 관련돼 있는 목사들이 있다.
뉴라이트가 관여하는 분야갸 굉장히 광범위 하다. 뉴라이트는 우파 쪽에서도 개화된 우파를 표방한다. 관용성도 있고 진보를 이해하는 성격을 갖고 있기도 한데, 여러 요소들이 뭉쳐져 있다. 서경석, 김진홍 목사도 뉴라이트 운동에 참여하고 있지만 뉴라이트 역사관을 주장하는 이들은 안병직, 이영훈 교수다. 뉴라이트 역사관은 기존의 역사 인식과 많이 다르다. 특히 그들이 내세우는 것 중 하나는 한국이 해방 후에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룩했다고 얘기하는데 그들이 먼저 내세우는 게 산업화다. 산업화 이후에 민주화가 됐다고 강조한다. 나는 그 두 가지가 동시에 이뤄졌다는 건 인정하지만 산업화가 민주화를 이끌었다는 것에는 반대 입장을 갖고 있다. 오히려 민주화가 됐기 때문에 산업화도 가능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처음부터 독재를 하진 않았다. 자유민주주의를 구현하려고 했는데, 정권에 대한 욕심 때문에 독재를 하게 됐다. 이승만 대통령을 하야 하게 한 민주화의 바람이 5.16 이후 차단됐다. 박정희 대통령이 일본에서 차관을 들여와 경제를 일으키려고 했지만, 이 과정도 민주화의 기운이 산업화의 바람에 접목함으로써 폭발적인 발전이 이뤄진 것이라 본다. 대개 먹고 살만하니까 민주화가 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본다면 북한은 우리보다 훨씬 발전했어야 한다. 해방 이후 북한의 산업화 조건이 남한보다 훨씬 좋았다. 전기나 공장 등의 여건도 풍부했다. 산업화가 민주화를 이끌었다고 한다면 북한 역시 민주화가 됐어야 하지만, 결국 민주화를 억압했기 때문에 산업화도 이루지 못했다. 필리핀도 우리나라보다 경제적 여건 등이 좋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역사를 보면 산업화가 민주화를 이끈 요소도 없지 않아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민주화가 산업화를 견인하는 역할을 했다. 민주화의 고통과 시련이 있었기 때문에 산업화 세력이 더 타락하지 않은 것이다.
5.16을 군사 반란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 지금 사회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여주는 듯 하다. 쉽게 부정되거나 왜곡할 수 없는 역사가 말 하지 못할 문제로 여겨지고 있다.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모르겠다.
장관 후보자들이 대통령을 의식해서 5.16에 대해 입을 봉하게 되면, 막상 장관이 됐을 때 어떻게 자기 업무에 소신껏 임하겠나. 사상으로 묶는 건 (대통령) 자신을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다. 지금 국정을 책임 장관제로 하겠다고 했지만, 이 말에 역행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감정이 상하겠지만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만 장관들도 제대로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유신, 인혁당 사건 등에 대해 사과 비슷한 걸 하긴 했지만, 진심이었다기보다 정권을 잡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랬던 것 아닌가. 지금은 입만 단속 하는 게 아니라 사고와 생각까지 단속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박 대통령의 뜻에 맞는지 맞지 않는지만 생각할 것이고 결국 국민을 위한 생각은 들어설 자리를 잃는다. 대국민 담화에서 보여준 모습도 너무 경직돼 있고, 비판을 수용하거나 의견을 수렴하려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 것 같아서 걱정스럽다.
3월 4일부터 4월 22일까지, 매주 월요일 한국기독교역사를 알리려는 강좌를 하고 있다. 어떤 내용인가?
해방 전 기독교역사에 대해서는 이미 했고, 이번에는 해방 후 기독교 역사에 대해 나누려고 한다. 해방 이후의 교회 재건, 선교사들의 사역, 이후의 교단 분열, 한국기독교 성장 과정, 해외 선교, 신학적 갈등 문제에 대해 다룬다.
한국 기독교 역사가 한 세기를 넘었는데, 요즘 교계를 들여다보면 발전과 성숙의 동력을 잃은 듯 하다. 오히려 자괴감에 빠지게 하는 사건, 사고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어 더욱 씁쓸하다. 회복의 고리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
종교가 세속적으로 타락하면 그 종교의 끝이 온다. 고려 시대 사원이나 승려들의 타락이 말 할 수 없을 지경이었고, 불교가 쇠퇴하는 원인이 됐다. 서구 교회의 경우 과거에는 화려한 외형적 교회와 교회에 다니는 교인들의 숫자로 봤지만 지금 그런 외형적 교회는 사라졌다. 하지만 기독교적 가치를 헌법 등 사회 질서 속에 남겨뒀다. 하지만 한국교회의 경우 제대로 된 가치관이 없다. 세속적 가치관을 그대로 도입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 기독교가 제대로 된 가치관을 세상에 남겨두고 사라지면 그나마 다행인데 그렇지 못할 것 같다. 지금처럼 세습, 교권의 권력화, 성 스캔들을 일으키게 되면 교회는 끝나는 거다.
지금부터라도 잘하면 그나마 희망이 있지 않을까?
대오각성 해야 한다. 사실 교회 타락과 부패가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심각하다. 지방에 가서 보니 모 교단 사람들은 5백명 이상 다니는 교회도 거의 세습을 끝냈다. 세습은 교회의 사유화와 마찬가지다. 가톨릭 사제가 처음부터 금혼을 한 건 아니었다. 워낙 세습이 빈번해 지위와 재산을 아들에게 넘겨주니까 그레고리 7세 때 사제들의 독신 규율을 완성했다. 한국도 목회자가 될 사람은 결혼을 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게 아닌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얘기한다.
세습을 하는 목회자도 그렇지만, 이를 방관하고 묵인하는 교인들의 태도도 문제다. 교회의 가르침에 문제가 있다.
교회와 목회자들이 ‘예스맨’을 키울 게 아니라 자기 영역에서 독자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신앙인을 키워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문화, 사고방식이 아직은 이런 걸 싫어한다. 아이가 어머니의 젖만 먹고 품 속에서만 있도록 하는 거와 다름 없다. 아이가 자라서 밥을 먹고, 굳은 음식을 먹도록 키우질 않는 거다. 모든 영적 권위가 목사에게 있고, 그걸 의지하니 모든 행정이나 교회와 제반된 일에 대해서도 예스맨이 된다. 지난해 감리교에서 세습금지법을 만들었지만, 김국도 목사의 경우는 편법으로 세습을 했다. 교인들이 목회자가 세습을 했을 때 저항하지 못하겠으면 차라리 교회를 나와야 한다고 본다. 나는 힘이 없다고 하면서 그대로 남아 있는 건 세습을 방조하는 일이다.
1953년 7월 27일에 정전협정을 맺었다. 마침 그 해가 계사년이고 60년이 흐른 올해 계사년이 됐다. 마침 페이스북을 통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자고 주장했다. 평화협정에 어떤 내용을 담길 바라는가?
60년 전 정전협정 체결 당사자는 유엔 사령관이었다. 당시 유엔이 미군이 중심이 됐으니 지금상황에서 보면 미국과 중국, 북한이 협정 당사자이다. 우리나라는 협정 당사자가 아닌 셈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당사자는 우리나라인만큼 지금이라도 앞장서서 북한과 평화협정을 맺자는 거다. 현 상황의 정전협정에서는 우리나라에 주도권이 없다. 평화협정을 맺으면 주변 강대국의 보증이 따라야 한다. 그리고 평화협정 단계에 이르면 군대도 줄이고 NLL문제라든지 휴전선을 둘러싼 각종 문제들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할 수 있을 거라 본다. 개성공단을 몇 개 더 만들어서 통일 문제에 더 접근할 수 있을 거다. 통일을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남북이 실질적으로 이익을 공유할 수 있는 방법으로 통일을 이뤄갔으면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은 북한에 진출하는 것이다. 미래학자들이 말하길,2030년에 한국의 경제규모가 세계 5위 안으로 들어올 가능성이 있는데 이의 전제 조건은 통일이다. 북한은 산업 불모지인데다가 우리 언어를 쓰는 사람들하고 협력해 기업을 일으키면 가능성이 있다는 거다. 서로가 덕이 될 수 있고 상생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그것의 모범 케이스가 개성공단이다. 천안함, 연평도 사건이 있었지만 개성공단 없애자는 소리는 안한다. 그만큼 중요하고 절박하다는 얘기다. 우리 말을 쓸 수 있는 근로자를 얻는다는 건 쉽지 않다. 개성공단을 통해 확인했으니 하나나 두 개 더 만들었으면 한다. 페이스북에서는 개성공단 열 개 만들면 싸울 필요 없고, 백 개 만들면 통일이라고 했다. 상생의 기초를 만드는 것이 평화협정의 취지다. 평화협정에 무엇을 담을 지는 각자 의견이 다르겠지만 평화협정은 남북관계, 통일문제를 두고 볼 때 굉장히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남북관계를 대외에 의존하지 말고 남북이 주체적으로 형성해 갈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만들었으면 한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하 수상한 시절에 기독 언론의 역할과 책임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언을 청했다. 이 교수는 열왕기상 22장에 기록된 아합 왕과 여호사밧 왕의 이야기를 통해 거짓 영에 대한 말씀을 들려주었다.
열왕기상에 보면 거짓 영이 들어간 선지자들이 제대로 된 말을 하지 않는다. 오늘날 기독 언론이나 한국 언론이 다 그렇진 않지만 대부분이 과거에는 이비어천가를 부르더니 지금은 박비어천가를 부른다. 기독 언론도 세습이나 교회의 도덕적 타락 문제, 목회자들의 자질 등에 대해 정확한 진단을 하고 있는지 반추해 봐야 한다. 거짓 영이 입마다 붙어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참 안타까운 사례들이 많다. 요즘은 목회자가 제대로 하지 못하는 역할을 언론이 해줬으면 하는데 언론도 다 입을 다물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걱정스럽다.
원문보기
http://www.crosslow.com/news/articleView.html?idxno=1074
얼마 전 김동호 목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보고, 신사참배 자료집 발간을 준비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목표한 금액이 금세 달성됐다고 들었는데, 자료집에서 다루는 내용이 궁금하다.
신사참배에 대한 총체적인 내용을 담은 자료집이 없다. 미국 선교사들이 선교 본부에 신사참배 문제에 대해 보고한 문서들과, 한국에 있던 미 영사관에서 국무성에 보고한 문건들을 책으로 엮은 건 영문판으로 나와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이 직접 관련돼 있거나 어떤 사건에 대해 일본 총독부가 압력을 가해 재판을 했다는 자료집 등은 정리가 되어 있지 않다. 신사참배와 관련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재판기록이나 경찰조서, 여러 곳에서 보도한 자료들이 묶여있지 않아서 신사참배 문제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비록 내가 그 분야 전공자는 아니지만 어느 학술발표회에서 있을 신사참배에 대한 발표를 준비를 하면서 자료가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지 않은 사실을 확인하게 됐다. 그래서 자료집의 필요성이 느껴졌다. 황당한 것은 지금까지 한국교회가 신사참배를 반대했었다는 역사적인 명분을 축적해왔는데 후손들이 선진들의 행적을 정리해 놓지 않았다고 하는 거다. 이건 부끄러운 일이다. 이 분야 전문가에게 물어보니 자료집을 만들면 대략 3권 정도의 분량이 나온다고 한다. 신문과 잡지, 일본에 있는 문서들을 다 찾아서 번역까지 하면 책으로 나오는 데까지 3년 정도 소요될 예정이다. 내가 모금했던 비용보다 더 많은 금액이 필요하지만, 돈을 다 모을 때까지 기다리면 시작도 못할 것 같아서 일단 5천만원 모금 요청을 했었고 고맙게도 많은 분들이 동참해 주셨다.
이런 일은 직접 페북을 통해 알려도 됐을 것 같은데.
내가 보훈처 산하의 사단법인 산돌손양원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 있다. 자료집을 만들자고 이사회에 제안을 했는데 모금 문제 등으로 반응이 적극적이지가 않아서 일단 내가 팔을 걷어붙였다. 그래서 김 목사님을 찾아갔고 좋게 생각해주셔서 결과도 좋았다. 나는 페북 통해서 모금하고 이런 걸 해보질 않았던데다, 모금하는데 재주가 없는 사람이다.
지난해 말 페북에 가입한 이후 꾸준히 글을 올리며 견해를 밝혀오고 있다. 페친도 많은데 그들과 SNS를 통해 교류하는 느낌이 어떤지 궁금하다.
난 페북이나 트위터를 잘 몰랐다. 지난해 대선 후에 젊은 분들하고 모임을 가진 적이 있는데 우리 사회 안에서 공유하고 전달해야 할 가치가 있다는 얘기를 나눴다. 나는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신문 기고를 통해 입장을 밝혀 왔다. 그런데 후배들이 SNS를 소개해주면서, 의견을 표출하는게 신문보다 더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사실 지금도 내 글을 올리는 것 외에는 다른 건 모른다. 지난해 12월부터 글을 올리다가 최근에 두 주 정도 쉰 적이 있다. 너무 고민스러웠다. 내가 여기에 이런 글을 쓴다고 해서 어떤 효과나 감흥도 없다면 굳이 쓸 필요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사야 선지자나 바울 사도가 외쳤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라는 심경과도 비슷했다. 그러다가 나 같은 사람의 얘기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해서 의기소침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내 친구 손봉호 교수가 구약 선지자들이 자신의 예언이 이루어지지 않을 줄 알면서도 외치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을 '선지자적 비관'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내가 선지자는 아니지만. 암튼 요즘 용기를 내서 조금씩 쓰고 있다.
역사학자로서 볼 때 선지자적 비관은 계속될 것 같다. 지난 정부에 이어 지금까지 역사 왜곡 발언이 이어져오는 것 같다.
국무총리가 5. 16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피력한 적이 있은 후 지시가 내려온 것 같다. 5.16에 대한 소신을 피력하지 말라고. 아니면 눈치를 보고 있거나. 그런데 이게 역사 왜곡이다. 교과서에서 5.16은 군사정변, 쿠데타라고 되어 있는데 그걸 가르쳐야 할 교과부 장관도 제대로 된 답을 못한다는 건 앞으로 우리 역사가 얼마나 더 왜곡될 지 우려되는 대목이다. 정치가 역사를 좌지우지 하지 않아야 된다. 그건 역사가들의 몫이다. 정권의 신념과 맞지 않다고 해서 제동을 걸고 왜곡된 역사를 가르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역사를 보는 관점이 뒤틀려 있는 것이 식민지 시대에 일제가 우리나라를 근대화시켰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고 있는 뉴라이트의 역사관이다. 일제가 총칼로 사람들을 위협하면서 철도 놓고 도로 닦은 걸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에 일제가 근대화를 시켰다고 하다면, 그 시절에 독립운동하고 나라를 찾기 위해 일제에 저항한 행동은 반역적인 일이 되는 것 아닌가. 이명박 정권이 잘못한 게 많지만 그 중 하나는 뉴라이트 역사관을 반영해 근현대사를 왜곡한 것이다. 이 일에 대해서는 분명히 기록해 놓아야 한다.
뉴라이트 얘기를 하면 관련돼 있는 목사들이 있다.
뉴라이트가 관여하는 분야갸 굉장히 광범위 하다. 뉴라이트는 우파 쪽에서도 개화된 우파를 표방한다. 관용성도 있고 진보를 이해하는 성격을 갖고 있기도 한데, 여러 요소들이 뭉쳐져 있다. 서경석, 김진홍 목사도 뉴라이트 운동에 참여하고 있지만 뉴라이트 역사관을 주장하는 이들은 안병직, 이영훈 교수다. 뉴라이트 역사관은 기존의 역사 인식과 많이 다르다. 특히 그들이 내세우는 것 중 하나는 한국이 해방 후에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룩했다고 얘기하는데 그들이 먼저 내세우는 게 산업화다. 산업화 이후에 민주화가 됐다고 강조한다. 나는 그 두 가지가 동시에 이뤄졌다는 건 인정하지만 산업화가 민주화를 이끌었다는 것에는 반대 입장을 갖고 있다. 오히려 민주화가 됐기 때문에 산업화도 가능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처음부터 독재를 하진 않았다. 자유민주주의를 구현하려고 했는데, 정권에 대한 욕심 때문에 독재를 하게 됐다. 이승만 대통령을 하야 하게 한 민주화의 바람이 5.16 이후 차단됐다. 박정희 대통령이 일본에서 차관을 들여와 경제를 일으키려고 했지만, 이 과정도 민주화의 기운이 산업화의 바람에 접목함으로써 폭발적인 발전이 이뤄진 것이라 본다. 대개 먹고 살만하니까 민주화가 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본다면 북한은 우리보다 훨씬 발전했어야 한다. 해방 이후 북한의 산업화 조건이 남한보다 훨씬 좋았다. 전기나 공장 등의 여건도 풍부했다. 산업화가 민주화를 이끌었다고 한다면 북한 역시 민주화가 됐어야 하지만, 결국 민주화를 억압했기 때문에 산업화도 이루지 못했다. 필리핀도 우리나라보다 경제적 여건 등이 좋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역사를 보면 산업화가 민주화를 이끈 요소도 없지 않아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민주화가 산업화를 견인하는 역할을 했다. 민주화의 고통과 시련이 있었기 때문에 산업화 세력이 더 타락하지 않은 것이다.
5.16을 군사 반란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 지금 사회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여주는 듯 하다. 쉽게 부정되거나 왜곡할 수 없는 역사가 말 하지 못할 문제로 여겨지고 있다.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모르겠다.
장관 후보자들이 대통령을 의식해서 5.16에 대해 입을 봉하게 되면, 막상 장관이 됐을 때 어떻게 자기 업무에 소신껏 임하겠나. 사상으로 묶는 건 (대통령) 자신을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다. 지금 국정을 책임 장관제로 하겠다고 했지만, 이 말에 역행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감정이 상하겠지만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만 장관들도 제대로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유신, 인혁당 사건 등에 대해 사과 비슷한 걸 하긴 했지만, 진심이었다기보다 정권을 잡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랬던 것 아닌가. 지금은 입만 단속 하는 게 아니라 사고와 생각까지 단속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박 대통령의 뜻에 맞는지 맞지 않는지만 생각할 것이고 결국 국민을 위한 생각은 들어설 자리를 잃는다. 대국민 담화에서 보여준 모습도 너무 경직돼 있고, 비판을 수용하거나 의견을 수렴하려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 것 같아서 걱정스럽다.
3월 4일부터 4월 22일까지, 매주 월요일 한국기독교역사를 알리려는 강좌를 하고 있다. 어떤 내용인가?
해방 전 기독교역사에 대해서는 이미 했고, 이번에는 해방 후 기독교 역사에 대해 나누려고 한다. 해방 이후의 교회 재건, 선교사들의 사역, 이후의 교단 분열, 한국기독교 성장 과정, 해외 선교, 신학적 갈등 문제에 대해 다룬다.
한국 기독교 역사가 한 세기를 넘었는데, 요즘 교계를 들여다보면 발전과 성숙의 동력을 잃은 듯 하다. 오히려 자괴감에 빠지게 하는 사건, 사고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어 더욱 씁쓸하다. 회복의 고리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
종교가 세속적으로 타락하면 그 종교의 끝이 온다. 고려 시대 사원이나 승려들의 타락이 말 할 수 없을 지경이었고, 불교가 쇠퇴하는 원인이 됐다. 서구 교회의 경우 과거에는 화려한 외형적 교회와 교회에 다니는 교인들의 숫자로 봤지만 지금 그런 외형적 교회는 사라졌다. 하지만 기독교적 가치를 헌법 등 사회 질서 속에 남겨뒀다. 하지만 한국교회의 경우 제대로 된 가치관이 없다. 세속적 가치관을 그대로 도입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 기독교가 제대로 된 가치관을 세상에 남겨두고 사라지면 그나마 다행인데 그렇지 못할 것 같다. 지금처럼 세습, 교권의 권력화, 성 스캔들을 일으키게 되면 교회는 끝나는 거다.
지금부터라도 잘하면 그나마 희망이 있지 않을까?
대오각성 해야 한다. 사실 교회 타락과 부패가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심각하다. 지방에 가서 보니 모 교단 사람들은 5백명 이상 다니는 교회도 거의 세습을 끝냈다. 세습은 교회의 사유화와 마찬가지다. 가톨릭 사제가 처음부터 금혼을 한 건 아니었다. 워낙 세습이 빈번해 지위와 재산을 아들에게 넘겨주니까 그레고리 7세 때 사제들의 독신 규율을 완성했다. 한국도 목회자가 될 사람은 결혼을 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게 아닌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얘기한다.
세습을 하는 목회자도 그렇지만, 이를 방관하고 묵인하는 교인들의 태도도 문제다. 교회의 가르침에 문제가 있다.
교회와 목회자들이 ‘예스맨’을 키울 게 아니라 자기 영역에서 독자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신앙인을 키워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문화, 사고방식이 아직은 이런 걸 싫어한다. 아이가 어머니의 젖만 먹고 품 속에서만 있도록 하는 거와 다름 없다. 아이가 자라서 밥을 먹고, 굳은 음식을 먹도록 키우질 않는 거다. 모든 영적 권위가 목사에게 있고, 그걸 의지하니 모든 행정이나 교회와 제반된 일에 대해서도 예스맨이 된다. 지난해 감리교에서 세습금지법을 만들었지만, 김국도 목사의 경우는 편법으로 세습을 했다. 교인들이 목회자가 세습을 했을 때 저항하지 못하겠으면 차라리 교회를 나와야 한다고 본다. 나는 힘이 없다고 하면서 그대로 남아 있는 건 세습을 방조하는 일이다.
1953년 7월 27일에 정전협정을 맺었다. 마침 그 해가 계사년이고 60년이 흐른 올해 계사년이 됐다. 마침 페이스북을 통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자고 주장했다. 평화협정에 어떤 내용을 담길 바라는가?
60년 전 정전협정 체결 당사자는 유엔 사령관이었다. 당시 유엔이 미군이 중심이 됐으니 지금상황에서 보면 미국과 중국, 북한이 협정 당사자이다. 우리나라는 협정 당사자가 아닌 셈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당사자는 우리나라인만큼 지금이라도 앞장서서 북한과 평화협정을 맺자는 거다. 현 상황의 정전협정에서는 우리나라에 주도권이 없다. 평화협정을 맺으면 주변 강대국의 보증이 따라야 한다. 그리고 평화협정 단계에 이르면 군대도 줄이고 NLL문제라든지 휴전선을 둘러싼 각종 문제들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할 수 있을 거라 본다. 개성공단을 몇 개 더 만들어서 통일 문제에 더 접근할 수 있을 거다. 통일을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남북이 실질적으로 이익을 공유할 수 있는 방법으로 통일을 이뤄갔으면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은 북한에 진출하는 것이다. 미래학자들이 말하길,2030년에 한국의 경제규모가 세계 5위 안으로 들어올 가능성이 있는데 이의 전제 조건은 통일이다. 북한은 산업 불모지인데다가 우리 언어를 쓰는 사람들하고 협력해 기업을 일으키면 가능성이 있다는 거다. 서로가 덕이 될 수 있고 상생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그것의 모범 케이스가 개성공단이다. 천안함, 연평도 사건이 있었지만 개성공단 없애자는 소리는 안한다. 그만큼 중요하고 절박하다는 얘기다. 우리 말을 쓸 수 있는 근로자를 얻는다는 건 쉽지 않다. 개성공단을 통해 확인했으니 하나나 두 개 더 만들었으면 한다. 페이스북에서는 개성공단 열 개 만들면 싸울 필요 없고, 백 개 만들면 통일이라고 했다. 상생의 기초를 만드는 것이 평화협정의 취지다. 평화협정에 무엇을 담을 지는 각자 의견이 다르겠지만 평화협정은 남북관계, 통일문제를 두고 볼 때 굉장히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남북관계를 대외에 의존하지 말고 남북이 주체적으로 형성해 갈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만들었으면 한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하 수상한 시절에 기독 언론의 역할과 책임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언을 청했다. 이 교수는 열왕기상 22장에 기록된 아합 왕과 여호사밧 왕의 이야기를 통해 거짓 영에 대한 말씀을 들려주었다.
열왕기상에 보면 거짓 영이 들어간 선지자들이 제대로 된 말을 하지 않는다. 오늘날 기독 언론이나 한국 언론이 다 그렇진 않지만 대부분이 과거에는 이비어천가를 부르더니 지금은 박비어천가를 부른다. 기독 언론도 세습이나 교회의 도덕적 타락 문제, 목회자들의 자질 등에 대해 정확한 진단을 하고 있는지 반추해 봐야 한다. 거짓 영이 입마다 붙어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참 안타까운 사례들이 많다. 요즘은 목회자가 제대로 하지 못하는 역할을 언론이 해줬으면 하는데 언론도 다 입을 다물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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