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남오성 칼럼] 압력, 변화, 충돌, 희망[복상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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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12-12-05 15:46 / 조회 2,872 / 댓글 0본문
압력, 변화, 충돌, 희망
[265호 교회 돋보기] 4개의 키워드로 돌아본 2012년 한국교회
[265호] 2012년 11월 23일 (금) 남오성 osnam@yahoo.com
찬바람이 불어와 옷깃을 여민다. 서서히 한 해를 정리할 시간이다. 2012년 한국교회를 돌아보니 참으로 다사다난했다. 일 년 동안 교계 언론은 물론 중앙 일간지와 3대 방송국 뉴스를 장식했던 교회 이슈들을 보니 부끄럼에 낯이 화끈 달아오른다. 하지만 가만가만 들춰 보니 나름 다행이다 싶은 뿌듯한 소식들도 있다. 그리고 단어 네 개가 떠오른다. 압력, 변화, 충돌, 희망. 사회 여론과 정부의 압력에 밀려 변화를 모색한 교회들의 움직임이 있었다. 물론 여전히 개혁에 저항하는 구태 세력들도 보였지만, 다가오는 새로운 교회 생태계를 내다보고 씨를 뿌리는 작은 공동체들도 있었다. 이제 그 이야기를 함께 찬찬히 나눠보자.
압력
올해는 교회의 변화를 촉구하는 사회적 압력이 거센 한 해였다. 교회들이 일으키는 문제들이 교계를 넘어 사회 전체의 이슈로 번지자 주요 언론들은 일제히 비판의 목소리를 냈고, 이를 통해 형성된 사회 여론은 교계를 압박했다.
첫 실례로, 새해 벽두를 달군 ‘고문기술자’ 이근안 씨의 목사 면직 사건이 떠오른다. 이 씨는 1985년 ‘서울대 내란음모 사건’ 당시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을 잔인하게 고문한 사실이 드러나 7년간 수감생활을 하던 중, 교도소에서 통신 교육으로 신학과정을 마치고 2008년 10월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 후 순회 간증 활동을 다니며 “나는 고문기술자가 아닌 애국자”라고 표현하는 등 자신의 과거 고문 행적을 정당화하는 언행을 하여 비난을 받아 왔다. 그러다 2011년 12월 김근태 고문이 별세한 직후 교계 시민단체들이 일제히 이근안 씨에 대한 목사직 취소를 촉구하자, 해당 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이하 예장) 합동개혁 총회(총회장 정서영)는 여론에 밀려 긴급 징계위원회를 통해 면직 결정을 내렸다.
교회에 대한 비판적인 사회 여론은 정부마저 움직였다. 특히 세금 문제가 뜨거운 이슈였다. 지난 3월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의 “종교인 과세를 언제까지 미루고 있을 수는 없다”라는 발언이 보도되자, 그간 교회재정건강성운동(실행위원장 최호윤)이 꾸준히 추진해 온 목회자 세금 납부 운동이 급물살을 탔다. 특히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 총무 김영주)는 사회적으로 만연한 한국교회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불식하고자 목회자 소득세 납부를 위해 적극적으로 여론 조성에 나섰고, 이에 부응하여 대한성공회가 성직자 납세를 결의하기도 했다. 교회협의 노력과는 별개로, 지난 9월 예장 합동 총회(총회장 정준모)도 납세연구위원회 설치를 결의했다. 또한 지난 6월 강남구청은 소망교회, 청운교회, 밀알복지재단 등이 운영하는 카페, 빵집, 체력단련장 등 목적 외 사업에 대해 총 5억 원의 재산세를 징수하여 그간 감세 및 면세 혜택을 누리던 전국의 교회들을 바짝 긴장시켰다.
국회와 법원도 교회에 손을 댔다. 지난 5월 보도된 바 있는, 한국교회 전체가 금융권에서 빌린 돈이 4조 4606억 원에 달한다는 금융감독원 자료는 국회의원이 요청해 제출된 것이었다. 또한 법원은 재정 비리로 구속된 제자교회 정삼지 목사에 대해 고등법원에서는 징역 2년 6월을 선고했다가, 대법원에서는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환송시켜 다시 심리하게 하며 정 목사를 들었다 놨다 했다. 교회 내부 문제가 교회법을 넘어 일반 세속 법정으로 넘어가는 사례는 이미 흔한 일이 되었다. 교회법을 집행하는 이들에 대한 도덕적 신뢰가 땅에 떨어진 지 오래기 때문이다.
변화
사회적 압력에 밀린 교회들은 잔뜩 긴장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위기의식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래서 연합기관 및 교단들은 생존을 위해 변화를 선택하기 시작했다. 이미 언급한 교회협의 적극적인 목회자 납세 운동을 예로 들 수 있으나, 누가 뭐래도 가장 대표적인 사건은 예장 통합(총회장 손달익)의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 홍재철) 탈퇴 결의다.
이에 따라 2012년을 한기총이 해체된 해로 선언하고 싶다. 그 결정적 계기는 지난 9월 예장 통합 총회의 탈퇴 결의다. 물론 예장 백석, 합신, 한영 교단의 탈퇴와 예장 대신, 고신, 기독교한국침례회(기침), 기독교대한성결교회(기성), 예수교대한성결교회(예성), 대한기독교나사렛성결교회 등의 행정보류 결정도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최초 한기총을 설립하는 데 주축을 담당했던 예장 통합이 탈퇴함으로써 결국 한기총은 예장 합동 및 이단 의혹 교단을 포함한 소수의 군소교단들만 남게 되었다. 이제 더 이상 양적으로 질적으로 감히 한국교회의 대표성을 운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로써 2010년 12월 길자연 대표회장 당선으로 시작된 금권선거 의혹, 시민단체들의 해체운동, 김용호 대표회장 직무대행, 특별총회 및 정관개정, 홍재철 대표회장 선출, 주요 교단의 행정보류 결정, 한국교회연합(대표회장 김요셉) 설립, 이단 공방 등으로 이어진 한기총 사태가 막을 내리게 되었다. 물론 앞으로도 한기총 잔당의 패악질은 계속해서 한국 교회의 명예를 실추시킬 것이기에 이에 대한 지속적인 대처는 필요하겠다.
개혁의 바람은 예장 합동 총회에도 불었다. 지난 9월 총회는 파행의 연속이었다. 총회 전부터 교단 총무 황규철 목사가 패륜 및 비리 의혹이 있다는 의혹과 당시 총회장 단일후보 정준모 목사가 노래주점에서 도우미와 유흥을 즐겼다는 보도로 인해 이미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드디어 총회 첫 날, 총무는 100여 명의 용역들을 동원하여 고압적인 자세로 기자와 참관단의 출입을 차단했다. 같은 시간, 회의장 안에서는 총무가 용역 철수를 요구하는 총대들을 가스총으로 위협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엔 총무 해임안과 총회장 불신임안을 회피하기 위해 총회장이 회의를 날치기로 파회하고 건물 전원을 내리고 도망쳤다. 이에 대해 총대들은 개혁의 깃발을 빼 들었다. 예년과는 달리 정치꾼들에게 마이크를 넘겨주고 방관하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까지 3분의 2가 넘는 높은 출석율을 기록했다. 그리고 파회 후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도 침착하게 ‘총회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위원장 서창수)를 출범시키는 희망적인 모습을 보였다.
연합기관과 교단총회뿐 아니라 대형교회에도 심상찮은 변화가 감지되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원로목사 조용기, 담임목사 이영훈) 장로들을 먼저 언급하고 싶다. 지난 5월, 교회측은 당기위원회(교회재판)를 열어 장로 3명을 징계하려 했다. 죄목은 이들 주도 하에 2011년 9월, 장로 50명이 조용기 목사와 장남 조희준 씨(전 국민일보 회장)를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여 교회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것이다. 누가 봐도 해당 장로들을 징계하라는 조용기 목사의 의중이 담긴 당기위원회였다. 그런데 징계 여부를 투표에 부친 결과 참석 인원 37명 중 34명이 징계에 반대하였다. 이는 조용기 목사의 독재적 권위에 도전한 장로들의 쿠데타라 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같은 달, 당회가 위 고발 사건의 진위를 자체 조사하기 위해 조직한 교회의혹진상조사위원회는 제기된 의혹들은 사실이며 이로 인해 교회는 최소 335억 원의 손해를 입었다고 공식 발표했다. 현재 검찰 조사가 진행 중이며, 과연 제자교회 정삼지 목사처럼 재정비리 문제로 대형교회 목사가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가 재현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위 경우 장로들의 역할이 컸다면, 삼일교회의 경우는 교인들과 신임 담임목사의 노력이 돋보였다. 2010년 11월, 전병욱 목사는 여성 교인을 성추행한 사건이 드러나 삼일교회를 떠났다. 그리고 지난 2월 교인 67명은 전 목사 사건의 실체를 밝히고 지급한 전별금 10억 원의 근거를 밝히라고 당회에 요구했고, 당회는 전 목사의 성범죄 내용을 공개했다. 지난 5월, 전 목사는 피해자들의 용서도 받지 않은 채 사임한 지 겨우 17개월 만에 이전 교회로부터 5km 밖에 안 떨어진 곳에 홍대새교회 개척 계획을 밝혔다. 이에 대해 삼일교회 교인 356명은 소속 노회인 평양노회에 전 목사에 대한 면직 청원서를 제출했으나, 노회는 절차상의 하자를 들어 접수를 거절했다. 이후 교인들은 당회를 통해 지난 10월 정기 노회에 공식적으로 전 목사 면직 탄원서를 제출했다. 또한 삼일교회에 새로 부임한 송태근 담임목사는 지난 10월 위임목사 취임 예배에서 전 목사에게 피해 입은 여성들에게 사과하고 책임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에 대한 후속 조치로 당회원과 교역자 일동 명의로 신문 광고를 통해 전 목사 성추행 사건 피해자와 교인, 그리고 한국교회에 공개 사과문을 발표했다.
대형교회 목회 패러다임의 전환을 선언하여 박수받은 목사도 있었다. 출석교인 2만 명의 분당우리교회를 담임하는 이찬수 목사는 지난 7월 주일예배 설교 중 교회 해체를 선언했다. 앞으로 10년 동안 교인 숫자의 절반 또는 4분의 3정도를 줄이고, 작년에 650억 원에 매입한 교육관을 10년 후에는 되팔아 한국교회와 사회를 위해 쓰겠다는 것이다. 아직은 불확실한 10년 후 계획에 불과할 뿐이며, 결단 및 발표의 과정에서 대형교회 목사의 독단적 한계가 드러나긴 했지만, 한국교회를 좀 먹는 토건 성장주의에 대한 반성을 선언한 공은 인정하고 싶다.
충돌
이러한 개혁의 흐름에 모든 교회들이 동참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쉽지만 이에 역행하는 교회들로 인해 개혁 전선에 충돌과 마찰을 빚었다. 그 중 하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위 이찬수 목사의 스승 옥한흠 목사가 생전에 담임했던 사랑의교회(담임목사 오정현)이다. 사회적 만류에도 불구하고 예배당 용도로 공공 도로 지하를 점유하는 등의 특혜 의혹을 받으며 2010년부터 대법원 앞에 최소 2000억 원 이상 소요되는 초대형 예배당을 짓고 있는 사랑의교회는 결국 지난 6월 서울시로부터 시정명령을 받았다. 주민감사 결과 서울시는 “사랑의교회가 지하를 사용하는 것은 위법, 부당하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서초구와 교회측은 불복했고, 이에 대해 지난 8월 서초구민과 시민 단체들은 서울행정법원에 공공 도로 점유 허가 취소, 사랑의교회 건축 허가 취소, 손해배상 등을 신청하며 주민 소송을 제기했다. 이는 “확산을 위한 건물 포기”로 칭찬 들은 분당우리교회와 달리 “성장을 위한 건물 건축”의 과거 패러다임을 고집하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사례라 하겠다.
‘개혁 대 반개혁’ 격돌의 대표적인 현장은 세습반대운동이었다. 지난 6월 소위 ‘한국교회 세습 1호’로 알려진 김창인 목사(전 충현교회 담임목사)는 과거 자신의 아들 김성관 목사에게 담임목사직을 세습한 과오를 인정하고 공개적으로 사죄하며 세습반대론에 힘을 실었다. 그러나 이에 반하여 한기총은 “‘세습’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안 된다”며 사실상 세습에 찬성하는 반동적 입장을 밝혔다. 이어 9월에는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가 세습을 지지하는 설교문을 <조선일보> 전면 광고로 발표했다가 높은뜻연합선교회 김동호 목사로부터 페이스북을 통해 거센 비판을 받았다. 이에 대해 김홍도 목사는 김동호 목사 글의 일부 표현을 꼬투리 잡아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으나, 김동호 목사는 눈도 꿈쩍 않고 오히려 더욱 교회세습반대운동에 헌신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기독교대한감리회가 교단 헌법에 세습방지조항을 담기로 결의하여 세습 반대 여론이 활활 타올랐다. 그러나 한기총 대표회장을 지낸 길자연 목사가 담임하는 왕성교회가 아들 길요나 목사 세습을 통과시키며 찬물을 끼얹는 듯했으나, 자세히 살펴보니 겨우 15표 차로 간신히 통과된 사실이 드러나 오히려 세습 반대가 시대적 대세임을 증명하고 말았다. 결국 지난 11월 뜻을 같이하는 시민단체들이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공동대표 김동호, 백종국, 오세택)를 출범시키며 세습금지법 확대를 위한 대대적인 운동을 예고했다.
희망
2012년은 한국교회 개혁의 대안은 바로 작은 교회 운동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시킨 해이다. 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의 교회 해체 선언을 굳이 재론하지 않더라도, 교회성장주의 신화의 시효가 이미 만료되었음은 상식이다. 작은교회운동은 한국교회의 미래 생태계이며 이미 도래한 미래이다. 14개의 작은 교회들을 회원으로 하는 개혁교회네트워크(운영위원장 최우돈)는 지난 5월 ‘이런 교회 다니고 싶다’ 세미나를 개최했다. 벌써 7년째 계속되고 있는 이 행사는 전국의 교회와 교인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또한 올해도 교회2.0목회자운동(실행위원장 이진오)은 월례 포럼, 지역 모임, 신학교 방문 포럼 등을 통해 세속적 가치를 거부하는 작고 건강한 교회의 모델을 성공적으로 전파하였다. 또한 한기총 해체 운동, 전병욱 목사 면직 운동, 담임목사직 세습 반대 운동 등 교계 현안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주요 언론을 통해 다수 회원 교회들의 목회 사례가 한국교회의 건전한 변화를 이끌 대안적 모델로 확인되기도 했다.
또한 지난 10월에는 한국교회의 희망인 작은 교회들이 모인 소박한 자리가 열렸다. “교회 개혁,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개최된 교회개혁실천연대(개혁연대, 공동대표 박종운․백종국․오세택․정은숙) 10주년 기념 행사에 회원 150여 명이 모였다. 그 자리에서 언덕교회, 너머서교회, 새맘교회, 함께가는교회, 기산교회 등이 소박한 공연을 선보였다. 이들은 한국교회의 부패상과 폐해를 온 몸으로 체험했으며, 눈물을 흘리며 새로운 공동체를 어렵게 세워, 힘들지만 즐겁게 살아가는 작은 교회들이다. 이 교회들 말고도 새로운 교회 생태계의 주인공이 될 민들레 홀씨들이 많다. 그들과 함께 개혁연대 10주년 주제가 “너, 그리스도의 몸이여”(김영범)를 희망가로 부르며 이 글을 맺고자 한다.
이 땅의 교회들 참으로 연약하고
부족한 모습들에 때론 절망도 하지만
그 어느 한 사람 주가 포기하지 않으시듯
이 교회들도 놓지 않으시리
여전히 수많은 지식만 앞세우고
삶 한가운데서는 열매를 맺지 못하며
사랑하라 말씀하신 그 분부는 잊어버리고
헛된 꿈만 꾸며 달리고 있지만
너 연약하나 거룩한 교회
순결한 그리스도의 몸이여
이제껏 묻어있던 세속의 때를 벗고
다시 거룩한 새 옷을 입으라
너 아주 작지만 위대한 교회
찬란한 그리스도의 몸이여
무너진 기초를 진리로 다시 세우고
생명의 빛을 전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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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오성 목사, 교회개혁실천연대 협동사무국장 osnam@yahoo.com
연세대와 성결대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미국 듀크대에서 중세 및 종교개혁 신학(Th.M)을 공부했다. 보스턴대에서 박사 과정을 수학하다 귀국, 2006년부터 2009년 2월까지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역사신학을 가르쳤다. 교회개혁실천연대 사무국장으로 3년 간 일했으며, 현재 일산은혜교회 청년부를 맡고 있다. 신학 전공 유학생 온라인 커뮤니티인 나모스클럽 (www.namos.org) 설립·운영자이기도 하다.
[265호 교회 돋보기] 4개의 키워드로 돌아본 2012년 한국교회
[265호] 2012년 11월 23일 (금) 남오성 osnam@yahoo.com
찬바람이 불어와 옷깃을 여민다. 서서히 한 해를 정리할 시간이다. 2012년 한국교회를 돌아보니 참으로 다사다난했다. 일 년 동안 교계 언론은 물론 중앙 일간지와 3대 방송국 뉴스를 장식했던 교회 이슈들을 보니 부끄럼에 낯이 화끈 달아오른다. 하지만 가만가만 들춰 보니 나름 다행이다 싶은 뿌듯한 소식들도 있다. 그리고 단어 네 개가 떠오른다. 압력, 변화, 충돌, 희망. 사회 여론과 정부의 압력에 밀려 변화를 모색한 교회들의 움직임이 있었다. 물론 여전히 개혁에 저항하는 구태 세력들도 보였지만, 다가오는 새로운 교회 생태계를 내다보고 씨를 뿌리는 작은 공동체들도 있었다. 이제 그 이야기를 함께 찬찬히 나눠보자.
압력
올해는 교회의 변화를 촉구하는 사회적 압력이 거센 한 해였다. 교회들이 일으키는 문제들이 교계를 넘어 사회 전체의 이슈로 번지자 주요 언론들은 일제히 비판의 목소리를 냈고, 이를 통해 형성된 사회 여론은 교계를 압박했다.
첫 실례로, 새해 벽두를 달군 ‘고문기술자’ 이근안 씨의 목사 면직 사건이 떠오른다. 이 씨는 1985년 ‘서울대 내란음모 사건’ 당시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을 잔인하게 고문한 사실이 드러나 7년간 수감생활을 하던 중, 교도소에서 통신 교육으로 신학과정을 마치고 2008년 10월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 후 순회 간증 활동을 다니며 “나는 고문기술자가 아닌 애국자”라고 표현하는 등 자신의 과거 고문 행적을 정당화하는 언행을 하여 비난을 받아 왔다. 그러다 2011년 12월 김근태 고문이 별세한 직후 교계 시민단체들이 일제히 이근안 씨에 대한 목사직 취소를 촉구하자, 해당 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이하 예장) 합동개혁 총회(총회장 정서영)는 여론에 밀려 긴급 징계위원회를 통해 면직 결정을 내렸다.
교회에 대한 비판적인 사회 여론은 정부마저 움직였다. 특히 세금 문제가 뜨거운 이슈였다. 지난 3월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의 “종교인 과세를 언제까지 미루고 있을 수는 없다”라는 발언이 보도되자, 그간 교회재정건강성운동(실행위원장 최호윤)이 꾸준히 추진해 온 목회자 세금 납부 운동이 급물살을 탔다. 특히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 총무 김영주)는 사회적으로 만연한 한국교회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불식하고자 목회자 소득세 납부를 위해 적극적으로 여론 조성에 나섰고, 이에 부응하여 대한성공회가 성직자 납세를 결의하기도 했다. 교회협의 노력과는 별개로, 지난 9월 예장 합동 총회(총회장 정준모)도 납세연구위원회 설치를 결의했다. 또한 지난 6월 강남구청은 소망교회, 청운교회, 밀알복지재단 등이 운영하는 카페, 빵집, 체력단련장 등 목적 외 사업에 대해 총 5억 원의 재산세를 징수하여 그간 감세 및 면세 혜택을 누리던 전국의 교회들을 바짝 긴장시켰다.
국회와 법원도 교회에 손을 댔다. 지난 5월 보도된 바 있는, 한국교회 전체가 금융권에서 빌린 돈이 4조 4606억 원에 달한다는 금융감독원 자료는 국회의원이 요청해 제출된 것이었다. 또한 법원은 재정 비리로 구속된 제자교회 정삼지 목사에 대해 고등법원에서는 징역 2년 6월을 선고했다가, 대법원에서는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환송시켜 다시 심리하게 하며 정 목사를 들었다 놨다 했다. 교회 내부 문제가 교회법을 넘어 일반 세속 법정으로 넘어가는 사례는 이미 흔한 일이 되었다. 교회법을 집행하는 이들에 대한 도덕적 신뢰가 땅에 떨어진 지 오래기 때문이다.
변화
사회적 압력에 밀린 교회들은 잔뜩 긴장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위기의식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래서 연합기관 및 교단들은 생존을 위해 변화를 선택하기 시작했다. 이미 언급한 교회협의 적극적인 목회자 납세 운동을 예로 들 수 있으나, 누가 뭐래도 가장 대표적인 사건은 예장 통합(총회장 손달익)의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 홍재철) 탈퇴 결의다.
이에 따라 2012년을 한기총이 해체된 해로 선언하고 싶다. 그 결정적 계기는 지난 9월 예장 통합 총회의 탈퇴 결의다. 물론 예장 백석, 합신, 한영 교단의 탈퇴와 예장 대신, 고신, 기독교한국침례회(기침), 기독교대한성결교회(기성), 예수교대한성결교회(예성), 대한기독교나사렛성결교회 등의 행정보류 결정도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최초 한기총을 설립하는 데 주축을 담당했던 예장 통합이 탈퇴함으로써 결국 한기총은 예장 합동 및 이단 의혹 교단을 포함한 소수의 군소교단들만 남게 되었다. 이제 더 이상 양적으로 질적으로 감히 한국교회의 대표성을 운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로써 2010년 12월 길자연 대표회장 당선으로 시작된 금권선거 의혹, 시민단체들의 해체운동, 김용호 대표회장 직무대행, 특별총회 및 정관개정, 홍재철 대표회장 선출, 주요 교단의 행정보류 결정, 한국교회연합(대표회장 김요셉) 설립, 이단 공방 등으로 이어진 한기총 사태가 막을 내리게 되었다. 물론 앞으로도 한기총 잔당의 패악질은 계속해서 한국 교회의 명예를 실추시킬 것이기에 이에 대한 지속적인 대처는 필요하겠다.
개혁의 바람은 예장 합동 총회에도 불었다. 지난 9월 총회는 파행의 연속이었다. 총회 전부터 교단 총무 황규철 목사가 패륜 및 비리 의혹이 있다는 의혹과 당시 총회장 단일후보 정준모 목사가 노래주점에서 도우미와 유흥을 즐겼다는 보도로 인해 이미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드디어 총회 첫 날, 총무는 100여 명의 용역들을 동원하여 고압적인 자세로 기자와 참관단의 출입을 차단했다. 같은 시간, 회의장 안에서는 총무가 용역 철수를 요구하는 총대들을 가스총으로 위협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엔 총무 해임안과 총회장 불신임안을 회피하기 위해 총회장이 회의를 날치기로 파회하고 건물 전원을 내리고 도망쳤다. 이에 대해 총대들은 개혁의 깃발을 빼 들었다. 예년과는 달리 정치꾼들에게 마이크를 넘겨주고 방관하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까지 3분의 2가 넘는 높은 출석율을 기록했다. 그리고 파회 후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도 침착하게 ‘총회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위원장 서창수)를 출범시키는 희망적인 모습을 보였다.
연합기관과 교단총회뿐 아니라 대형교회에도 심상찮은 변화가 감지되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원로목사 조용기, 담임목사 이영훈) 장로들을 먼저 언급하고 싶다. 지난 5월, 교회측은 당기위원회(교회재판)를 열어 장로 3명을 징계하려 했다. 죄목은 이들 주도 하에 2011년 9월, 장로 50명이 조용기 목사와 장남 조희준 씨(전 국민일보 회장)를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여 교회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것이다. 누가 봐도 해당 장로들을 징계하라는 조용기 목사의 의중이 담긴 당기위원회였다. 그런데 징계 여부를 투표에 부친 결과 참석 인원 37명 중 34명이 징계에 반대하였다. 이는 조용기 목사의 독재적 권위에 도전한 장로들의 쿠데타라 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같은 달, 당회가 위 고발 사건의 진위를 자체 조사하기 위해 조직한 교회의혹진상조사위원회는 제기된 의혹들은 사실이며 이로 인해 교회는 최소 335억 원의 손해를 입었다고 공식 발표했다. 현재 검찰 조사가 진행 중이며, 과연 제자교회 정삼지 목사처럼 재정비리 문제로 대형교회 목사가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가 재현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위 경우 장로들의 역할이 컸다면, 삼일교회의 경우는 교인들과 신임 담임목사의 노력이 돋보였다. 2010년 11월, 전병욱 목사는 여성 교인을 성추행한 사건이 드러나 삼일교회를 떠났다. 그리고 지난 2월 교인 67명은 전 목사 사건의 실체를 밝히고 지급한 전별금 10억 원의 근거를 밝히라고 당회에 요구했고, 당회는 전 목사의 성범죄 내용을 공개했다. 지난 5월, 전 목사는 피해자들의 용서도 받지 않은 채 사임한 지 겨우 17개월 만에 이전 교회로부터 5km 밖에 안 떨어진 곳에 홍대새교회 개척 계획을 밝혔다. 이에 대해 삼일교회 교인 356명은 소속 노회인 평양노회에 전 목사에 대한 면직 청원서를 제출했으나, 노회는 절차상의 하자를 들어 접수를 거절했다. 이후 교인들은 당회를 통해 지난 10월 정기 노회에 공식적으로 전 목사 면직 탄원서를 제출했다. 또한 삼일교회에 새로 부임한 송태근 담임목사는 지난 10월 위임목사 취임 예배에서 전 목사에게 피해 입은 여성들에게 사과하고 책임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에 대한 후속 조치로 당회원과 교역자 일동 명의로 신문 광고를 통해 전 목사 성추행 사건 피해자와 교인, 그리고 한국교회에 공개 사과문을 발표했다.
대형교회 목회 패러다임의 전환을 선언하여 박수받은 목사도 있었다. 출석교인 2만 명의 분당우리교회를 담임하는 이찬수 목사는 지난 7월 주일예배 설교 중 교회 해체를 선언했다. 앞으로 10년 동안 교인 숫자의 절반 또는 4분의 3정도를 줄이고, 작년에 650억 원에 매입한 교육관을 10년 후에는 되팔아 한국교회와 사회를 위해 쓰겠다는 것이다. 아직은 불확실한 10년 후 계획에 불과할 뿐이며, 결단 및 발표의 과정에서 대형교회 목사의 독단적 한계가 드러나긴 했지만, 한국교회를 좀 먹는 토건 성장주의에 대한 반성을 선언한 공은 인정하고 싶다.
충돌
이러한 개혁의 흐름에 모든 교회들이 동참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쉽지만 이에 역행하는 교회들로 인해 개혁 전선에 충돌과 마찰을 빚었다. 그 중 하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위 이찬수 목사의 스승 옥한흠 목사가 생전에 담임했던 사랑의교회(담임목사 오정현)이다. 사회적 만류에도 불구하고 예배당 용도로 공공 도로 지하를 점유하는 등의 특혜 의혹을 받으며 2010년부터 대법원 앞에 최소 2000억 원 이상 소요되는 초대형 예배당을 짓고 있는 사랑의교회는 결국 지난 6월 서울시로부터 시정명령을 받았다. 주민감사 결과 서울시는 “사랑의교회가 지하를 사용하는 것은 위법, 부당하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서초구와 교회측은 불복했고, 이에 대해 지난 8월 서초구민과 시민 단체들은 서울행정법원에 공공 도로 점유 허가 취소, 사랑의교회 건축 허가 취소, 손해배상 등을 신청하며 주민 소송을 제기했다. 이는 “확산을 위한 건물 포기”로 칭찬 들은 분당우리교회와 달리 “성장을 위한 건물 건축”의 과거 패러다임을 고집하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사례라 하겠다.
‘개혁 대 반개혁’ 격돌의 대표적인 현장은 세습반대운동이었다. 지난 6월 소위 ‘한국교회 세습 1호’로 알려진 김창인 목사(전 충현교회 담임목사)는 과거 자신의 아들 김성관 목사에게 담임목사직을 세습한 과오를 인정하고 공개적으로 사죄하며 세습반대론에 힘을 실었다. 그러나 이에 반하여 한기총은 “‘세습’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안 된다”며 사실상 세습에 찬성하는 반동적 입장을 밝혔다. 이어 9월에는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가 세습을 지지하는 설교문을 <조선일보> 전면 광고로 발표했다가 높은뜻연합선교회 김동호 목사로부터 페이스북을 통해 거센 비판을 받았다. 이에 대해 김홍도 목사는 김동호 목사 글의 일부 표현을 꼬투리 잡아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으나, 김동호 목사는 눈도 꿈쩍 않고 오히려 더욱 교회세습반대운동에 헌신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기독교대한감리회가 교단 헌법에 세습방지조항을 담기로 결의하여 세습 반대 여론이 활활 타올랐다. 그러나 한기총 대표회장을 지낸 길자연 목사가 담임하는 왕성교회가 아들 길요나 목사 세습을 통과시키며 찬물을 끼얹는 듯했으나, 자세히 살펴보니 겨우 15표 차로 간신히 통과된 사실이 드러나 오히려 세습 반대가 시대적 대세임을 증명하고 말았다. 결국 지난 11월 뜻을 같이하는 시민단체들이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공동대표 김동호, 백종국, 오세택)를 출범시키며 세습금지법 확대를 위한 대대적인 운동을 예고했다.
희망
2012년은 한국교회 개혁의 대안은 바로 작은 교회 운동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시킨 해이다. 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의 교회 해체 선언을 굳이 재론하지 않더라도, 교회성장주의 신화의 시효가 이미 만료되었음은 상식이다. 작은교회운동은 한국교회의 미래 생태계이며 이미 도래한 미래이다. 14개의 작은 교회들을 회원으로 하는 개혁교회네트워크(운영위원장 최우돈)는 지난 5월 ‘이런 교회 다니고 싶다’ 세미나를 개최했다. 벌써 7년째 계속되고 있는 이 행사는 전국의 교회와 교인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또한 올해도 교회2.0목회자운동(실행위원장 이진오)은 월례 포럼, 지역 모임, 신학교 방문 포럼 등을 통해 세속적 가치를 거부하는 작고 건강한 교회의 모델을 성공적으로 전파하였다. 또한 한기총 해체 운동, 전병욱 목사 면직 운동, 담임목사직 세습 반대 운동 등 교계 현안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주요 언론을 통해 다수 회원 교회들의 목회 사례가 한국교회의 건전한 변화를 이끌 대안적 모델로 확인되기도 했다.
또한 지난 10월에는 한국교회의 희망인 작은 교회들이 모인 소박한 자리가 열렸다. “교회 개혁,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개최된 교회개혁실천연대(개혁연대, 공동대표 박종운․백종국․오세택․정은숙) 10주년 기념 행사에 회원 150여 명이 모였다. 그 자리에서 언덕교회, 너머서교회, 새맘교회, 함께가는교회, 기산교회 등이 소박한 공연을 선보였다. 이들은 한국교회의 부패상과 폐해를 온 몸으로 체험했으며, 눈물을 흘리며 새로운 공동체를 어렵게 세워, 힘들지만 즐겁게 살아가는 작은 교회들이다. 이 교회들 말고도 새로운 교회 생태계의 주인공이 될 민들레 홀씨들이 많다. 그들과 함께 개혁연대 10주년 주제가 “너, 그리스도의 몸이여”(김영범)를 희망가로 부르며 이 글을 맺고자 한다.
이 땅의 교회들 참으로 연약하고
부족한 모습들에 때론 절망도 하지만
그 어느 한 사람 주가 포기하지 않으시듯
이 교회들도 놓지 않으시리
여전히 수많은 지식만 앞세우고
삶 한가운데서는 열매를 맺지 못하며
사랑하라 말씀하신 그 분부는 잊어버리고
헛된 꿈만 꾸며 달리고 있지만
너 연약하나 거룩한 교회
순결한 그리스도의 몸이여
이제껏 묻어있던 세속의 때를 벗고
다시 거룩한 새 옷을 입으라
너 아주 작지만 위대한 교회
찬란한 그리스도의 몸이여
무너진 기초를 진리로 다시 세우고
생명의 빛을 전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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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오성 목사, 교회개혁실천연대 협동사무국장 osnam@yahoo.com
연세대와 성결대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미국 듀크대에서 중세 및 종교개혁 신학(Th.M)을 공부했다. 보스턴대에서 박사 과정을 수학하다 귀국, 2006년부터 2009년 2월까지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역사신학을 가르쳤다. 교회개혁실천연대 사무국장으로 3년 간 일했으며, 현재 일산은혜교회 청년부를 맡고 있다. 신학 전공 유학생 온라인 커뮤니티인 나모스클럽 (www.namos.org) 설립·운영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