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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남오성 칼럼] 절망, 희망, 그리고 신앙[기독신문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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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12-09-27 08:07 / 조회 2,8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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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절망, 희망, 그리고 신앙 


                                                            남오성 목사(교단총회공동대책위원회 참관위원)
 
 
한국 교회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이젠 교회를 향한 절망의 소리들이 낯설지도 않다. 그 중 상당수는 한국 교회에서 가장 큰 비중과 역할을 차지하는 예장합동에 대한 뉴스들이다. 어떤 노회장은 교단 총무의 패륜 및 비리 의혹을 제기하며 총무실 앞에 인분을 퍼부었단다. 또 어떤 목사는 관을 끌고 베옷을 입고 총회 회관 앞에 나타나 합동총회에는 하나님의 공의가 죽었다고 장례를 지냈단다. 그리고 곧 총회장이 될 부총회장, 그리고 노회장과 교단 신학교 이사를 지낸 목사들이 노래주점에서 여성 도우미들과 함께 유흥을 즐기고, 그 중 하나는 이를 보도하는 언론과 인터뷰한 도우미에게 “당신 딸 밤길 조심하라”고 협박했단다.

설마 했다. 그러나 역시나 하고 말았다. 절망의 장면을 두 눈 똑똑히 목격했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 9월 17일부터 21일까지 대구 성명교회에서 개최된 총회 설립 100주년 기념 97회 총회 일정 전체를 참관했다. 첫째 날, 말로만 듣던 용역들을 봤다. 대형버스 4대에 나눠 타고 온 검정양복의 거구들이 고압적인 자세로 기자와 참관단의 출입을 가로 막았다. 같은 시간, 회의장 안에서는 교단 총무가 가스총 꺼내 들고 용역을 철수 시키라는 총대들을 향해 위협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마지막 날엔 총회장이 총회를 날치기로 파회시키고 사라졌다. 노래주점 사건에서 비롯된 총회장 불신임안과 패륜 및 비리 의혹으로 인한 총무 해임안을 다루지 않기 위함이란다.

이번 총회는 장자교단을 자임하는 예장합동의 수치다. 거룩한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모욕이다. 이 절망의 수렁을 벗어나 교회의 갱신을 꿈꿀 회복의 가능성은 어디 있는가?

나는 이번 총회에서 희망의 싹을 보았다. 이번 총대들은 달랐다. 더 이상 정치꾼들에게 마이크를 넘겨주고 방관하지 않았다. 총대들은 노래주점 유흥과 도우미 협박으로 논란을 일으킨 목사를 총대 자격 없다며 회의장에서 쫓아냈다. 또한 교단 신학의 전당인 신학교를 단지 부동산 가치로만 보고, 교단의 미래인 신학생을 등록금 수입원으로 이해하던 탐라대 매입 시도를 총대들은 좌절시켰다. 그리고 총대들은 찬송가를 또 새로 만들어 교인들의 재정부담을 가중시키고 교회연합을 분열시키려는 계획을 폐기시켰다.

무엇보다도 눈에 띈 것은 총대들의 높은 참여 열기다. 예년 같으면 총회 마지막 날이면 총대들이 떠난 빈자리가 너무나 많아 누가 볼까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그러나 이번 총회는 달랐다. 2/3 이상의 총대들이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켰다. 우리 교단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된다는 강한 열기가 느껴졌다. 결국 교단 개혁을 갈망하는 뜨거운 에너지는 <총회정상화를위한비상대책위원회>를 탄생시켰다. 총회장이 무단 파회하고 도망친 후 전기를 끊어 회의장은 무덥고 깜깜했지만, 비상대책위원회는 본 회의보다도 질서 있고 침착하게 교단 개혁을 위한 회의를 진행했다. 예장합동의 희망이 어디 있는가? 나는 더 이상 정치꾼들에게 교단을 방치하지 않으려는 총대들의 참여와 비상대책위원회의 개혁활동에 교단의 희망을 걸어본다. 그런데 그것으로 족한가? 아니다.

“절망의 반대말은 희망이 아니라 신앙이다.” 인간의 절망의 문제에 대해 덴마크 태생의 19세기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가 그의 저서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제시한 대답이다. 그렇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고민하는 절망의 문제는 오직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만 해결 가능하다. 작금의 예장합동과 한국교회를 향한 절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절망에 대한 해결은 인간에 대한 희망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신앙으로 가능하다.

하나님을 믿고 담대히 나아가자. 거룩하신 하나님의 교회는 그 분의 위대하신 경륜에 의해 도도히 하나님 나라의 길을 걸어왔다. 크고 힘있는 거짓 예언자들이 판을 쳤지만, 하나님께서는 작고 연약한 참된 예언자들을 통해 일하셨다. 권력과 율법에 무릎 꿇은 다수의 바리새인, 사두개인, 서기관들이 날뛰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자기 욕심을 버리고 오직 예수만을 따른 소수의 어부, 창녀, 세리들의 편에 계셨다. 돈과 권력에 물들어 타락해버린 거대한 로마 교회를 분연히 떨치고 일어선 개혁자들이 바로 우리 신앙의 선조이며,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계셨다. 그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분노하고, 기도하고, 일어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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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kidok.com/news/articleView.html?idxno=77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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