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방인성 인터뷰] 희년의 공동체를 꿈꾸는 방인성 목사[뉴조,1/16]
페이지 정보
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12-04-06 17:24 / 조회 3,325 / 댓글 1본문
희년이란 무엇인가
공의로운 사회, 희년의 공동체를 꿈꾸는 방인성 목사
'희년이란 무엇인가' 연재 인터뷰 첫 번째 분은 하나누리 대표, 희년함께 공동대표, 함께여는교회 담임목사를 맡고 있는 방인성 목사님입니다. 희년함께 이성영 간사가 하나누리 사무실에서 방인성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이성영 (이하 이): 목사님의 소개와 사역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방인성(이하 방): 저는 현재 함께여는교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목회 현장에서 마음 깊이 갖고 있는 관점은 두 가지예요. 하나는 평화의 복음을 가지고 있는 성도들이 공동체 안에서 평화를 실질적으로 맛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에서는 많이 가진 사람, 적게 가진 사람, 많이 배운 사람, 적게 배운 사람, 남자나 여자, 노인이나 어린아이 등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조화를 이루어 그리스도 안에서 평화를 맛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평화를 실질적으로 맛본다는 것은 분단의 아픔을 갖고 있는 한반도 땅에서는 교회가 민족의 아픔을 치유하는 평화의 복음의 능력을 나타내어야 하는 것이구요. 또 하나는 예수님은 희년의 주인공이시라는 것, 희년의 삶을 구체적으로 살아 낼 수 있는 공동체가 교회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민족을 치유하는 평화의 복음을 가지고 있는 공동체, 그리고 희년을 살아 낼 수 있는 삶의 공동체. 제 목회의 관점은 이 두 가지입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통일부 산하에 소속된 '하나누리'라는 단체를 섬기고 있고 '희년함께'를 섬기고 있습니다. 목회자라면 누구나 다 가지는 고민이겠지만 제가 목사로서 살면서 고민하는 문제 중 하나는 '설교와 내 삶이 하나로 조화되고 일치될 수 없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믿고 있는 성경의 진리를 현장에서 직접 제 몸으로 헌신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촛불을켜는그리스도인들'과 같은 실천적인 행동 단체에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2012년에는 목회 사역, 하나누리 통일 운동, 그리고 제가 마음에 깊이 애정을 갖고 있는 희년함께, 현장에서는 촛불을켜는그리스도인들, 생명평화마당 정도로 일을 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말하고 보니 너무 많네요.
이: 목사님께서는 하나누리, <뉴스앤조이>, 희년함께, 예수살기 등 교회 개혁·사회변혁·통일운동 등에 깊이 참여해 오셨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의 칼럼집을 읽어 보면 지역 교회의 소탈한 목회자의 느낌이 많이 드는데 어떻게 교회 개혁·사회 변혁·통일 운동 등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는지 그 과정을 나눠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방: 전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물었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질문은 정말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질문인 것 같아요. 왜냐하면 우리는 사랑하는 것이 많으니까. 돈을 사랑하지, 명예를 사랑하지, 그리고 목사라면 큰 교회 목사가 되고자 하는 야망, 이런 욕심이 다 있잖아요? 우리가 사랑하는 것이 진짜 많아요.
사랑으로 찾아오셔서 질문하신 예수님께 "주님이 아십니다"고 말했던 베드로의 고백은 정말 진솔한 고백인 것 같아요. 주님을 사랑한다는 얘기를 예전같이 그렇게 자신 있게는 못 해도 진심으로 '주님께서 내 마음을 아신다'라는 고백은 저에게도 동일한 고백인 것 같아요.
이 고백을 세 번씩이나 한 후 그 다음의 말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럼 저는 어떻게 됩니까?"라는 베드로의 질문에 예수님이 "네가 젊어서는 네 마음대로 갔지만 늙어서는 너를 띠 띠우고 네 마음대로 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네 마음대로 가지 못하게 한다는 그 띠, 그 띠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정말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을 하면, 주님이 이끄시는 대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인생인 것 같아요.
저에게는 지금의 이 걸음이 굉장히 자연스러운 것 같아요. 오늘의 우리 사회와 교회의 현실, 한국 땅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왜곡된 사회 현실, 복음에 합당하지 않은 이런 현실들을 보고 우리 마음대로, 자기 욕심대로 살아간다,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오늘 우리 사회는 우리의 구체적 삶의 문제에 대해서 복음적으로 살기 힘든, 우리가 말하는 희년의 정신을 살아 낼 수 없게 만드는 그런 사회인데 여기에 우리가 몸으로 투쟁하고 항거하지 않는다는 건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 것일까 생각을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각기 주님께서 우리를 인도해 가시는 방법과 우리들에게 요청하시는 것은 다를 수 있어요. 그런데 복음을 갖고 있고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 앞의 현실 문제에 대해서 자신의 역량껏 감당할 수 있는 몫을 하는 것은 너무 자연스러운 것 같아요. 제가 무슨 특별한 계기가 있는 게 아니구요. 제가 과격하거나 투쟁적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제 안에 복음이 나타내는 자연발생적인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자연스러운데 아마 사람들은 날 과격하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이 : 목사님께서 현재 목회하고 계시는 함께여는교회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방: 하나님나라를 위해 세상에 보냄을 받은 교회가 우리 교회의 정관에 있는 목표이구요. 세상 속에서 하나님나라를 실현하는 공동체를 지향합니다. 그리고 세 가지 실천 사항이 있는데 십자가의 삶을 살아가는 개인, 모두가 다 동일하게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성도의 자격으로 함께 엮어져 가는 공동체, 사회 앞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해 가는 공동체가 3개의 실천 과제입니다. 저희 교회는 성도들이 주체적으로 운영을 해 가고 저는 설교에 집중하는 그런 목회를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몸으로 사회참여를 많이 하게 되는 이유가 설교를 몸으로 살아 내기 위한 부분도 있습니다.
저희 교회는 재정을 투명하게 사용하고 재정을 이웃을 위해 쓰고자 교회 건물은 스스로 갖지 않고 있습니다. 교회가 건물을 가지면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불편하지만 교회 건물을 갖지 않고 빌려서 씁니다. 나그네의 삶을 교회 공동체가 살아 본다는 의미도 있어요. 교회 구성원은 어린아이로부터 팔십, 구십 세 가까이 되는 노인까지 연령도 다양하고 성향도 다양하지만 잘 어우러져 있습니다.
올해의 저희 교회의 목표는 삶을 나누는 공동체를 구체적으로 해 보는 것 입니다. 각기 떨어져 있지만 공동체 영성을 회복해서 희년 정신이 깃들어져 있는 그런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고민하는 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저희 교회는 예배드리기 위해서 모이기보다는 우리의 삶을 함께 나누고 희년의 삶을 살아 낼 수 있는 공동체가 되어 보자는 마음으로 모이고 있습니다.
이: 옥스퍼드교회, 성터교회, 함께여는교회에서 오랫동안 목회 사역을 하시면서 여러 가지 교회적 실천들을 많이 하셨습니다. 지역 교회 차원에서 희년 정신에 기반한 교회의 실천 사례들을 나누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방: 교회들마다 다양한 특성이 다 있지만 한국교회에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지역 교회입니다. 지역과 함께 호흡하고 숨 쉬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물론 특수한 교회도 있고 특별한 소명을 갖고 성도들이 모여서 할 수 있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국교회는 지역과 호흡하는 교회가 너무 없습니다. 지역에 있는 사람들과 호흡하고 같이 고민하고 녹아드는 교회가 되는 게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중소형 교회들이 지역에 들어가서 호흡하고 교회들 간의 네트워크를 형성해서 지역에 있는 문제들을 풀어내고 지역사람들과 함께하는 교회 사역이 필요합니다.
제가 지난번 목회했던 교회가 지역에 50년 가까이 있었는데 지역과 전혀 관계를 맺지 않았던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목회를 하면서 지역에 있는 구체적인 문제-장애인, 청소년 문제, 가난 문제, 독거노인 문제 등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성도들과 함께 조사를 하였습니다.
그러한 과정 중에 우리 교회가 50년이 되어서 희년을 구체적으로 적용해 볼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장로님, 제직들과 함께 성경 공부를 했어요. 세미나도 듣고. 레위기 25장을 다시 읽으면서 결국 우리에게 적용해야 할 문제가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했습니다. 그런데 땅 문제를 적용하기는 너무 힘들었어요. 부채 탕감은 한번 해 볼 필요가 있겠다 싶어서 성경을 연구하고 크리스천 경제학자를 모셔서 강의를 들으면서 실제로 부채 탕감은 해야 되는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를 들면 7년이 넘는 빚을 계속 고집하고 있는 것은 인간관계만 나빠지고 채권자나 채무자 모두에게 아무런 소득이 없다는 경제학자들의 연구도 있더라구요.
안식년과 희년을 주신 하나님의 법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면 꼭 살아 내야 된다고 결심하고 당회에서 부채 탕감하자는 얘기를 했었습니다. 어떤 장로님은 이거 공산주의 하자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었지만 많은 장로님들이 호응을 해 주셔서 실제로 부채 탕감을 하였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식구들끼리 부채 탕감, 직장에서 자기가 관계되는 사람들의 부채 탕감, 7년 이상 지났거나 꼭 자기가 마음에 탕감해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있는 사람들은 부채를 탕감해 주기로 제안했어요. 그래서 채권자가 부채 탕감을 써서 헌금 봉투에 넣고 채무자에게 가서 얘기해서 탕감하는 그런 운동을 했어요. 아주 행복하게 했죠. 아주 많이는 아니고 15건 정도 나왔어요. 액수도 3000만 원도 있고 100만 원, 50만 원도 있었어요. 어떤 집사님은 남편 몰래 모았던 1000만 원을 회사 직원에게 빌려 줬는데 그걸 못 받게 된 거에요. 그래서 남편한테 얘기도 못 하고 그것 때문에 수년을 마음고생을 했는데 부채 탕감을 해 주면서 그 직원과의 관계도 회복하고 본인도 자유 함을 얻게 된 거에요. 그런 과정이 큰 은혜가 되었어요.
그리고 교회가 있던 동네 주변에 전기가 끊겼다거나 특별히 의료보험을 못 낸 사람들이 꽤 있더라구요. 제가 목회를 해서 교회 창립 50주년이 되기까지 7년 정도 지역사회를 열심히 섬겼어요. 그래서 동사무소 사회복지과 직원이 우리 교회가 진정성 있게 지역을 섬기는 것을 알고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자료들을 우리에게 제공해 줬어요. 독거노인, 소년소녀 가장, 장애인 등 의료보험을 내지 못한 사람 등을 찾아 의료보험 대납을 해 주어서 의료보험을 다시 살려 줬어요. 그건 굉장히 필요한 일인 것 같아요. 지금도 가난한 사람들은 의료보험 못 내고 살아가는 사람들 많아요. 조사해 보면 많이 나옵니다. 그리고 단전된 분들의 전기 요금을 대납해 주기도 했구요. 약 5000만 원을 가지고 실질적으로 그런 일들을 했었죠. 또 자립 의지가 있는 사람에게 소 창업 자금을 빌려 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 시절인 참여정부 때는 공부방 지역 아동 센터를 많이 권장했어요. 저희 교회에서는 열악한 환경에 있는 동네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방과 후 교실을 연다거나 실제 기초 수급 대상자인 자녀들을 받는 어린이집 등을 했습니다.
이렇게 교회 창립 50주년에 구체적으로, 우리 몸으로, 물질로 사회에 기쁨의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인들은 사랑의 장기기증본부와 함께 헌혈 운동, 사후 장기 기증, 골수 조혈모 세포 기증 등을 하기도 했구요. 우리 교회 내의 축하 잔치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냥 예배를 드리고 이웃에게 기쁨의 소식을 구체적으로 전해 주며 희년의 해를 보냈습니다.
이: 목사님께서도 신장 기증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방: 저도 마침 쉰 살이 되는 해가 우리 교회 희년의 해라서 성도 중에 당뇨로 인해서 신장이 망가진 분이 있어서 신장 기증을 결심했습니다. 제 신장을 다른 사람에게 기증을 해 주고 사랑의 장기기증본부에서는 그 성도에게 맞는 신장을 이식해 주었습니다. 그래도 제가 희년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을 믿고 설교하는 사람으로서 몸으로 작게나마 실천할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정말 행복한 목회 시절이었습니다.
이: 사후 장기 기증은 사람들이 하기도 하지만 살아 계시면서 신장을 떼어 주는 것은 큰 결심을 하신 것 같습니다.
방: 그걸 크게 결심해서 한 것은 아니구요. 피를 쏟는 사랑이 목회자에게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몸과 피를 다 주셨는데 목회자가 성도와 함께 지내면서…주님의 사랑에 비하면….
이: 이웃을 섬기는 희년 사역은 교회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지만 사회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국가기관인 사회복지센터에서 복지를 전담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 기관인 교회에서 복지의 한 축을 맡아 주는 것은 사회적으로 굉장히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아직은 한국이 복지국가로 더욱 가야겠지만 복지국가 시스템이 잘 정착하기 위해서라도 국가와 시민사회와 시장의 적절한 균형과 긴장이 필요한데요. 시민사회의 공간이 많이 부족한 한국사회에서 교회가 시민사회의 한 축을 맡아 주면 더욱 민간의 자율성이 강화된 복지 시스템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방: 민관 협력을 교회가 좀 할 필요가 있어요. 그런데 관이 너무 주도적으로 모든 것을 담당하게 되면 제도권에 의해서만 움직이기 때문에 거기에서 나오는 약점들이 있거든요. 제도권이 감당하지 못하는 건 항상 있습니다. 그건 교회가 감당해야 합니다. 또 교회가 제도권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어야 합니다. 제도권이라고 하는 것은 권위주의적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고 자칫 법보다 더 중요한 자유, 인권 등이 오히려 법에 의해서 왜곡되는 경우들이 있어요. 그런 것을 교회는 계속 얘기를 해서 그 법이 더 나은 법으로 바뀌도록,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희년 정신에 맞게끔 약자를 보호할 수 있는 법으로 고쳐지도록 교회는 작은 것에서부터 실천을 하고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교회는 정부의 바른 정책은 협력하고 도전할 것은 도전하는 긴장 관계를 가질 수 있는 깨어 있는 권위가 필요합니다.
이: 교회와 국가의 바람직한 관계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관계인 것 같습니다. 그 관계가 설정이 잘되었을 때는 교회와 사회가 건강한 구조가 되는데 너무 밀착이 일어나면 교회와 사회가 함께 부패하고 타락하게 되고 너무 떨어져 버리면 교회는 고립되고 배타적이 되고 사회는 도덕적 지향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방: 맞습니다. 교회가 국가와 너무 밀착되거나 너무 떨어지면 결과적으로 제도권에 순응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교회가 제도권과 너무 떨어지면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공동체가 되거나 개인 구제 차원으로만 흐르게 되어, 나쁜 제도를 그대로 묵인하는 결과를 만들어 피해는 점점 더 커지게 됩니다. 이건 교회가 하나님나라를 실현하는 공동체로서의 사명을 망각하는 거죠. 저는 교회가 그러면 안 된다고 봐요.
이: 목사님이 생각하시고 정의하시는 '희년'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방: 구원받음도 중요하지만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도 매우 중요한데 저는 구원받은 사람으로 살아야 할 삶, 그것이 희년이라고 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가 주인이 되신 나라인데 예수가 주인이 되었다는 것은 희년의 주인공이신 예수가 주인이 된 것이란 말이에요. 이미 희년은 우리가 살아 내야 되는 당면 과제에요. 왜냐면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우리가 믿기 때문입니다. 말로는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희년을 살아 내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것이고 주님을 슬프게 하는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특별히 희년을 살아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저는 구체적으로 한국교회가 땅 문제와 경제구조에 대해 고민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복음의 핵심이 희년이고 하나님의 나라는 희년이 충만한 것인데 그것을 믿는다면 현재의 왜곡된 토지 소유 구조 위에 경제구조가 만들어져 있는 이 현실에서 순응하고 사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봐요. 더욱이 한국교회가 과도한 부동산을 소유하며 힘을 키우고 물량적 기복 신앙을 부추기는 것은 희년 정신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바나바가 회개하고 땅을 내놓았듯이 한국교회가 땅을 환원하거나 부를 축적하지 않고 교육 등 사회의 공익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끔 해 주는 그런 일들을 하며 희년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믿는 회개 운동이 벌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희년은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방법도 되지만 현재 우리의 문제를 치유할 수 있다고 봅니다. 희년은 억눌리고 속박된 것에서 해방되는 것인데, 저는 희년은 오늘 우리의 현실에 있는 문제를 치유하는 능력 있는 복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해서 그들을 치유하고 회복시켜 정말 하나님이 주인 되시는 삶으로 살도록 하기 위한 제도가 희년입니다. 더는 노예로 살지 않고 자유인으로, 더는 속박을 당하지 않고 해방을 맛보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희년이죠. 희년이 지켜지지 않으면 다시 노예로 전락하게 됩니다. 희년이 지켜지지 않으면 다시 여러 가지 다른 것들에 의해서 억눌림당하고 갇히게 됩니다. 그래서 희년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와 동시에 치유와 회복을 끊임없이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저는 희년이 경제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민족 분단의 아픔과 우리 내부의 여러 가지 지역적 갈등과 양극화를 치유해 줄 수 있는 복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현재 한국교회는 의미 있는 많은 시도를 할 수 있는 충분한 자산이 있지만 마음이 없거나 방법을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목사님이 구상하고 계시는 시도에 대해 나누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방: 저는 목회를 하면서 만난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소박하게 살면서 은혜를 좀 나눌까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목회 현장에서 만났던 장애인, 독거노인, 혼자서는 살 수 없는 그런 사람들과 함께 목회 이후에도 함께 살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제 소박한 꿈을 알고 장애인 자녀와 함께 사시는 권사님이 집 한 채를 내놓으셨고 이걸 알고 또 다른 집사님이 땅을 천 평 정도 아주 싸게 주셨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복지 차원에서 한번 시작을 해 볼까 했는데 다른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기부 받은 땅을 공유화해서 땅 때문에 어떤 빈부 격차가 생기는 일이 없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같이 사는 사람은 희년 마을, 통일 후 우리 사회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대안 공동체로 소박하게 한번 시작해 보면 어떨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개인적으로 건물을 지으면 그 사람이 사유화하고 그 땅은 공유하며 토지에 대한 사용료를 내어 공동체에 필요한 재정으로 사용하고 의지할 곳 없는 소외 계층을 공동체가 함께 능력껏 도와주는 이런 공동체를 하고 싶습니다. 소위 말하는 희년 공동체를 해보려고 합니다. 통일 후가 되면 땅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공의롭고 공평한 경제구조를 갖고 행복하게 살까, 우리 사회의 소외 계층을 어떻게 도울 것인가가 매우 중요할 텐데 이런 시도들을 앞서 실험해 보고자 합니다.
이: 서구에서는 이미 지역 단위에서, 마을 단위에서 토지 가치를 공유하는 실험들이 많이 일어났고 현재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지만 아직 한국은 토지 가치를 공유하는 전위적 시도들이 많이 부족한데 목사님의 시도가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장기려 박사의 청십자 의료보험조합이 오늘의 의료보험 제도의 모태가 되었듯이 목사님의 시도가 한국의 주거 복지, 통일 운동 등에 있어 해결해야 할 토지문제를 푸는 중요한 실험이 되면 좋겠습니다.
방: 저는 한국의 토지문제를 희년의 정신으로 풀어내지 못하면 통일이 되어도 그것은 재앙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반도 공동체가 희년의 정신에 입각하여 토지문제를 해결해야 되는데 지금 남한에서는 희년적 토지제도의 도입이 거의 혁명적인 시도라 쉽지 않을 것 같아요. 통일이 되어서는 북쪽의 토지문제를 해결하면서 자연스럽게 희년적 토지제도를 시도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우리 남쪽에서 먼저 토지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실험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북한이 조만간 열리고 통일이 될 텐데 정말 희년의 제도를 도입할 수 있도록 우리가 정신 바짝 차려서 해야 될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한국교회가 이렇게 대형화되고 땅을 갖고 부를 축적하고 사람 수를 많이 모아서 왜곡된 신자유주의적 경제 흐름에 발맞추어 가면 복음에도 역행하는 일이고 한반도 땅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사명을 망각하는 일인 것 같아요. 한반도 땅은 희년의 공동체를 세울 수 있는 아주 귀중한 땅입니다. 희년을 회복하고자 하는 회개 운동이 남쪽에서 벌어지고 이 땅에는 하나님의 정의와 공평이 세워지는 희년의 구조를 만들어서 인류에게 평화의 복음을 전해 주겠다라고 하는 의지가 있다면 하나님께서 통일의 문도 열어 주시고 이를 통해서 희망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희년함께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 희년함께에 해 주실 말씀이 있다면.
방: 희년함께 식구들 아주 귀한 것 같아요. 토지문제를 연구해 오고 특별히 헨리조지의 진보와 빈곤을 위시한 이론을 탐구하고 공부하며 온 것은 정말 귀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약간 우려하는 것은 우리 희년함께 식구들이 지성주의로 빠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희년은 구체적인 삶입니다. 우리 희년함께가 이론을 충실히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 못지않게 희년을 살아 낼 수 있기 위해서는 현장성, 그러니까 개발 문제나 가난의 문제에 대한 현장, 정치인들이 토지문제나 양극화 문제, 복지 문제를 정말 희년에 맞게끔 정책으로 도입할 수 있도록 계속 도전해야 하는 현장. 이런 현장성이 희년함께에 요구되는 것 같아요.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지만 특별히 토지문제, 그런 현장이 벌어지는 곳에는 우리가 더욱 마음을 갖고 그런 사람들과 같이 울고 고민을 하고, 정책적인 면에서는 구청과 시에게 도전하고 얘기하는 현장성을 좀 가졌으면 좋겠다는 것이 제 바람입니다.
이: 한국교회에 해 주실 말씀이 있다면.
방: 교회에서는 목사가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목사가 권위주의적일 필요가 없고, 주인 행세할 필요가 없으며 다만 말씀에 집중해야 할 것 같습니다. 희년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을 잘 드러내기 위한 말씀에 충실한 목회자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말씀 사역에 집중하여 진정한 권위를 회복하는 목회자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자꾸만 교회를 크게 키우고 행정을 어떻게 하고 돈을 어떻게 하고 하는데 너무 관심을 많이 가지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성도들에게 구체적인 것을 많이 맡겨 줬으면 좋겠어요. 성도들에게 배우고, 성도들을 존중하는 정직한 목회자가 필요합니다.
한국교회가 이제는 예수가 살아 있는 교회와 예수는 죽고 탐욕이 가득한 교회로 극명하게 갈라지는 시점에 왔다고 봅니다. 다시 말해 복음이 있는 교회와 복음이 없는 교회로 구분 됩니다. 성도들도 교회 안에 복음이 있는가를 들여다볼 수 있는 마음과 깨어 있음이 필요합니다. 한국교회는 더 이상 하나님께서 인내하시기 힘든 지경까지 왔습니다. 정말 회개 운동을 벌이든지 그렇지 않으면 종교개혁과 같은 새로운 교회 운동이 일어나든지 해야 하는 시점이 왔습니다. 회개 운동을 벌이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징계의 채찍을 드실 것이고 새로운 교회 운동이 곧 태동될 것입니다. 스스로 회개하고 정말 희년의 주인공이신 예수님 앞에 나아가는 대 회개 운동이 벌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교회는 제의적, 종교적 예배를 드리는 공동체라기보다는 삶을 살아 내는 공동체입니다. 초대교회 공동체는 희년의 공동체였고 희년의 삶을 살아 내는 공동체였습니다. 각자가 1주일 동안 하나님과 어떻게 살았는가를 나누기 위해서 모인 것이고 어떻게 하면 희년의 삶을 살아 낼 것인가를 서로 고민하는 장이 교회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반성하기도 합니다. 예배는 희년의 삶을 살고자 하는 공동체를 드리는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주일날 예배드리고 세상으로 가서 맘대로 욕심껏 사는 제의적 공동체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고 진정으로 행복한 희년의 삶을 회복하는 한국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마지막으로 기도 부탁하실 것들이 있다면.
방: 저는 여러 가지 사역이 많아서 영성 있는 목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영성은 '삶에서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현장에도 많이 나가고 바쁜 삶을 사는데 하나님과 동떨어져 있고, 자칫 저의 의로, 제 힘으로 하게 되면 영성이 없어지게 되고 메말라지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친밀함, 성령의 경험이 늘 나에게 끊이지 않아서 그리스도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평화, 그리스도의 생명력이 나에게 지속적으로 약동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제 기도 제목입니다. 자칫 메말라지거나 나의 의가 드러나거나 인간적인 모습이 드러나게 되면 결국 예수 그리스도가 가리게 되니까 올해는 영성 있는 목회자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기도 제목입니다.
원문보기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36737
공의로운 사회, 희년의 공동체를 꿈꾸는 방인성 목사
'희년이란 무엇인가' 연재 인터뷰 첫 번째 분은 하나누리 대표, 희년함께 공동대표, 함께여는교회 담임목사를 맡고 있는 방인성 목사님입니다. 희년함께 이성영 간사가 하나누리 사무실에서 방인성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이성영 (이하 이): 목사님의 소개와 사역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방인성(이하 방): 저는 현재 함께여는교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목회 현장에서 마음 깊이 갖고 있는 관점은 두 가지예요. 하나는 평화의 복음을 가지고 있는 성도들이 공동체 안에서 평화를 실질적으로 맛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에서는 많이 가진 사람, 적게 가진 사람, 많이 배운 사람, 적게 배운 사람, 남자나 여자, 노인이나 어린아이 등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조화를 이루어 그리스도 안에서 평화를 맛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평화를 실질적으로 맛본다는 것은 분단의 아픔을 갖고 있는 한반도 땅에서는 교회가 민족의 아픔을 치유하는 평화의 복음의 능력을 나타내어야 하는 것이구요. 또 하나는 예수님은 희년의 주인공이시라는 것, 희년의 삶을 구체적으로 살아 낼 수 있는 공동체가 교회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민족을 치유하는 평화의 복음을 가지고 있는 공동체, 그리고 희년을 살아 낼 수 있는 삶의 공동체. 제 목회의 관점은 이 두 가지입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통일부 산하에 소속된 '하나누리'라는 단체를 섬기고 있고 '희년함께'를 섬기고 있습니다. 목회자라면 누구나 다 가지는 고민이겠지만 제가 목사로서 살면서 고민하는 문제 중 하나는 '설교와 내 삶이 하나로 조화되고 일치될 수 없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믿고 있는 성경의 진리를 현장에서 직접 제 몸으로 헌신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촛불을켜는그리스도인들'과 같은 실천적인 행동 단체에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2012년에는 목회 사역, 하나누리 통일 운동, 그리고 제가 마음에 깊이 애정을 갖고 있는 희년함께, 현장에서는 촛불을켜는그리스도인들, 생명평화마당 정도로 일을 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말하고 보니 너무 많네요.
이: 목사님께서는 하나누리, <뉴스앤조이>, 희년함께, 예수살기 등 교회 개혁·사회변혁·통일운동 등에 깊이 참여해 오셨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의 칼럼집을 읽어 보면 지역 교회의 소탈한 목회자의 느낌이 많이 드는데 어떻게 교회 개혁·사회 변혁·통일 운동 등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는지 그 과정을 나눠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방: 전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물었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질문은 정말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질문인 것 같아요. 왜냐하면 우리는 사랑하는 것이 많으니까. 돈을 사랑하지, 명예를 사랑하지, 그리고 목사라면 큰 교회 목사가 되고자 하는 야망, 이런 욕심이 다 있잖아요? 우리가 사랑하는 것이 진짜 많아요.
사랑으로 찾아오셔서 질문하신 예수님께 "주님이 아십니다"고 말했던 베드로의 고백은 정말 진솔한 고백인 것 같아요. 주님을 사랑한다는 얘기를 예전같이 그렇게 자신 있게는 못 해도 진심으로 '주님께서 내 마음을 아신다'라는 고백은 저에게도 동일한 고백인 것 같아요.
이 고백을 세 번씩이나 한 후 그 다음의 말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럼 저는 어떻게 됩니까?"라는 베드로의 질문에 예수님이 "네가 젊어서는 네 마음대로 갔지만 늙어서는 너를 띠 띠우고 네 마음대로 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네 마음대로 가지 못하게 한다는 그 띠, 그 띠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정말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을 하면, 주님이 이끄시는 대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인생인 것 같아요.
저에게는 지금의 이 걸음이 굉장히 자연스러운 것 같아요. 오늘의 우리 사회와 교회의 현실, 한국 땅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왜곡된 사회 현실, 복음에 합당하지 않은 이런 현실들을 보고 우리 마음대로, 자기 욕심대로 살아간다,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오늘 우리 사회는 우리의 구체적 삶의 문제에 대해서 복음적으로 살기 힘든, 우리가 말하는 희년의 정신을 살아 낼 수 없게 만드는 그런 사회인데 여기에 우리가 몸으로 투쟁하고 항거하지 않는다는 건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 것일까 생각을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각기 주님께서 우리를 인도해 가시는 방법과 우리들에게 요청하시는 것은 다를 수 있어요. 그런데 복음을 갖고 있고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 앞의 현실 문제에 대해서 자신의 역량껏 감당할 수 있는 몫을 하는 것은 너무 자연스러운 것 같아요. 제가 무슨 특별한 계기가 있는 게 아니구요. 제가 과격하거나 투쟁적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제 안에 복음이 나타내는 자연발생적인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자연스러운데 아마 사람들은 날 과격하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이 : 목사님께서 현재 목회하고 계시는 함께여는교회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방: 하나님나라를 위해 세상에 보냄을 받은 교회가 우리 교회의 정관에 있는 목표이구요. 세상 속에서 하나님나라를 실현하는 공동체를 지향합니다. 그리고 세 가지 실천 사항이 있는데 십자가의 삶을 살아가는 개인, 모두가 다 동일하게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성도의 자격으로 함께 엮어져 가는 공동체, 사회 앞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해 가는 공동체가 3개의 실천 과제입니다. 저희 교회는 성도들이 주체적으로 운영을 해 가고 저는 설교에 집중하는 그런 목회를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몸으로 사회참여를 많이 하게 되는 이유가 설교를 몸으로 살아 내기 위한 부분도 있습니다.
저희 교회는 재정을 투명하게 사용하고 재정을 이웃을 위해 쓰고자 교회 건물은 스스로 갖지 않고 있습니다. 교회가 건물을 가지면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불편하지만 교회 건물을 갖지 않고 빌려서 씁니다. 나그네의 삶을 교회 공동체가 살아 본다는 의미도 있어요. 교회 구성원은 어린아이로부터 팔십, 구십 세 가까이 되는 노인까지 연령도 다양하고 성향도 다양하지만 잘 어우러져 있습니다.
올해의 저희 교회의 목표는 삶을 나누는 공동체를 구체적으로 해 보는 것 입니다. 각기 떨어져 있지만 공동체 영성을 회복해서 희년 정신이 깃들어져 있는 그런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고민하는 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저희 교회는 예배드리기 위해서 모이기보다는 우리의 삶을 함께 나누고 희년의 삶을 살아 낼 수 있는 공동체가 되어 보자는 마음으로 모이고 있습니다.
이: 옥스퍼드교회, 성터교회, 함께여는교회에서 오랫동안 목회 사역을 하시면서 여러 가지 교회적 실천들을 많이 하셨습니다. 지역 교회 차원에서 희년 정신에 기반한 교회의 실천 사례들을 나누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방: 교회들마다 다양한 특성이 다 있지만 한국교회에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지역 교회입니다. 지역과 함께 호흡하고 숨 쉬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물론 특수한 교회도 있고 특별한 소명을 갖고 성도들이 모여서 할 수 있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국교회는 지역과 호흡하는 교회가 너무 없습니다. 지역에 있는 사람들과 호흡하고 같이 고민하고 녹아드는 교회가 되는 게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중소형 교회들이 지역에 들어가서 호흡하고 교회들 간의 네트워크를 형성해서 지역에 있는 문제들을 풀어내고 지역사람들과 함께하는 교회 사역이 필요합니다.
제가 지난번 목회했던 교회가 지역에 50년 가까이 있었는데 지역과 전혀 관계를 맺지 않았던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목회를 하면서 지역에 있는 구체적인 문제-장애인, 청소년 문제, 가난 문제, 독거노인 문제 등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성도들과 함께 조사를 하였습니다.
그러한 과정 중에 우리 교회가 50년이 되어서 희년을 구체적으로 적용해 볼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장로님, 제직들과 함께 성경 공부를 했어요. 세미나도 듣고. 레위기 25장을 다시 읽으면서 결국 우리에게 적용해야 할 문제가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했습니다. 그런데 땅 문제를 적용하기는 너무 힘들었어요. 부채 탕감은 한번 해 볼 필요가 있겠다 싶어서 성경을 연구하고 크리스천 경제학자를 모셔서 강의를 들으면서 실제로 부채 탕감은 해야 되는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를 들면 7년이 넘는 빚을 계속 고집하고 있는 것은 인간관계만 나빠지고 채권자나 채무자 모두에게 아무런 소득이 없다는 경제학자들의 연구도 있더라구요.
안식년과 희년을 주신 하나님의 법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면 꼭 살아 내야 된다고 결심하고 당회에서 부채 탕감하자는 얘기를 했었습니다. 어떤 장로님은 이거 공산주의 하자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었지만 많은 장로님들이 호응을 해 주셔서 실제로 부채 탕감을 하였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식구들끼리 부채 탕감, 직장에서 자기가 관계되는 사람들의 부채 탕감, 7년 이상 지났거나 꼭 자기가 마음에 탕감해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있는 사람들은 부채를 탕감해 주기로 제안했어요. 그래서 채권자가 부채 탕감을 써서 헌금 봉투에 넣고 채무자에게 가서 얘기해서 탕감하는 그런 운동을 했어요. 아주 행복하게 했죠. 아주 많이는 아니고 15건 정도 나왔어요. 액수도 3000만 원도 있고 100만 원, 50만 원도 있었어요. 어떤 집사님은 남편 몰래 모았던 1000만 원을 회사 직원에게 빌려 줬는데 그걸 못 받게 된 거에요. 그래서 남편한테 얘기도 못 하고 그것 때문에 수년을 마음고생을 했는데 부채 탕감을 해 주면서 그 직원과의 관계도 회복하고 본인도 자유 함을 얻게 된 거에요. 그런 과정이 큰 은혜가 되었어요.
그리고 교회가 있던 동네 주변에 전기가 끊겼다거나 특별히 의료보험을 못 낸 사람들이 꽤 있더라구요. 제가 목회를 해서 교회 창립 50주년이 되기까지 7년 정도 지역사회를 열심히 섬겼어요. 그래서 동사무소 사회복지과 직원이 우리 교회가 진정성 있게 지역을 섬기는 것을 알고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자료들을 우리에게 제공해 줬어요. 독거노인, 소년소녀 가장, 장애인 등 의료보험을 내지 못한 사람 등을 찾아 의료보험 대납을 해 주어서 의료보험을 다시 살려 줬어요. 그건 굉장히 필요한 일인 것 같아요. 지금도 가난한 사람들은 의료보험 못 내고 살아가는 사람들 많아요. 조사해 보면 많이 나옵니다. 그리고 단전된 분들의 전기 요금을 대납해 주기도 했구요. 약 5000만 원을 가지고 실질적으로 그런 일들을 했었죠. 또 자립 의지가 있는 사람에게 소 창업 자금을 빌려 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 시절인 참여정부 때는 공부방 지역 아동 센터를 많이 권장했어요. 저희 교회에서는 열악한 환경에 있는 동네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방과 후 교실을 연다거나 실제 기초 수급 대상자인 자녀들을 받는 어린이집 등을 했습니다.
이렇게 교회 창립 50주년에 구체적으로, 우리 몸으로, 물질로 사회에 기쁨의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인들은 사랑의 장기기증본부와 함께 헌혈 운동, 사후 장기 기증, 골수 조혈모 세포 기증 등을 하기도 했구요. 우리 교회 내의 축하 잔치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냥 예배를 드리고 이웃에게 기쁨의 소식을 구체적으로 전해 주며 희년의 해를 보냈습니다.
이: 목사님께서도 신장 기증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방: 저도 마침 쉰 살이 되는 해가 우리 교회 희년의 해라서 성도 중에 당뇨로 인해서 신장이 망가진 분이 있어서 신장 기증을 결심했습니다. 제 신장을 다른 사람에게 기증을 해 주고 사랑의 장기기증본부에서는 그 성도에게 맞는 신장을 이식해 주었습니다. 그래도 제가 희년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을 믿고 설교하는 사람으로서 몸으로 작게나마 실천할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정말 행복한 목회 시절이었습니다.
이: 사후 장기 기증은 사람들이 하기도 하지만 살아 계시면서 신장을 떼어 주는 것은 큰 결심을 하신 것 같습니다.
방: 그걸 크게 결심해서 한 것은 아니구요. 피를 쏟는 사랑이 목회자에게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몸과 피를 다 주셨는데 목회자가 성도와 함께 지내면서…주님의 사랑에 비하면….
이: 이웃을 섬기는 희년 사역은 교회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지만 사회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국가기관인 사회복지센터에서 복지를 전담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 기관인 교회에서 복지의 한 축을 맡아 주는 것은 사회적으로 굉장히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아직은 한국이 복지국가로 더욱 가야겠지만 복지국가 시스템이 잘 정착하기 위해서라도 국가와 시민사회와 시장의 적절한 균형과 긴장이 필요한데요. 시민사회의 공간이 많이 부족한 한국사회에서 교회가 시민사회의 한 축을 맡아 주면 더욱 민간의 자율성이 강화된 복지 시스템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방: 민관 협력을 교회가 좀 할 필요가 있어요. 그런데 관이 너무 주도적으로 모든 것을 담당하게 되면 제도권에 의해서만 움직이기 때문에 거기에서 나오는 약점들이 있거든요. 제도권이 감당하지 못하는 건 항상 있습니다. 그건 교회가 감당해야 합니다. 또 교회가 제도권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어야 합니다. 제도권이라고 하는 것은 권위주의적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고 자칫 법보다 더 중요한 자유, 인권 등이 오히려 법에 의해서 왜곡되는 경우들이 있어요. 그런 것을 교회는 계속 얘기를 해서 그 법이 더 나은 법으로 바뀌도록,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희년 정신에 맞게끔 약자를 보호할 수 있는 법으로 고쳐지도록 교회는 작은 것에서부터 실천을 하고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교회는 정부의 바른 정책은 협력하고 도전할 것은 도전하는 긴장 관계를 가질 수 있는 깨어 있는 권위가 필요합니다.
이: 교회와 국가의 바람직한 관계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관계인 것 같습니다. 그 관계가 설정이 잘되었을 때는 교회와 사회가 건강한 구조가 되는데 너무 밀착이 일어나면 교회와 사회가 함께 부패하고 타락하게 되고 너무 떨어져 버리면 교회는 고립되고 배타적이 되고 사회는 도덕적 지향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방: 맞습니다. 교회가 국가와 너무 밀착되거나 너무 떨어지면 결과적으로 제도권에 순응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교회가 제도권과 너무 떨어지면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공동체가 되거나 개인 구제 차원으로만 흐르게 되어, 나쁜 제도를 그대로 묵인하는 결과를 만들어 피해는 점점 더 커지게 됩니다. 이건 교회가 하나님나라를 실현하는 공동체로서의 사명을 망각하는 거죠. 저는 교회가 그러면 안 된다고 봐요.
이: 목사님이 생각하시고 정의하시는 '희년'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방: 구원받음도 중요하지만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도 매우 중요한데 저는 구원받은 사람으로 살아야 할 삶, 그것이 희년이라고 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가 주인이 되신 나라인데 예수가 주인이 되었다는 것은 희년의 주인공이신 예수가 주인이 된 것이란 말이에요. 이미 희년은 우리가 살아 내야 되는 당면 과제에요. 왜냐면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우리가 믿기 때문입니다. 말로는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희년을 살아 내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것이고 주님을 슬프게 하는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특별히 희년을 살아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저는 구체적으로 한국교회가 땅 문제와 경제구조에 대해 고민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복음의 핵심이 희년이고 하나님의 나라는 희년이 충만한 것인데 그것을 믿는다면 현재의 왜곡된 토지 소유 구조 위에 경제구조가 만들어져 있는 이 현실에서 순응하고 사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봐요. 더욱이 한국교회가 과도한 부동산을 소유하며 힘을 키우고 물량적 기복 신앙을 부추기는 것은 희년 정신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바나바가 회개하고 땅을 내놓았듯이 한국교회가 땅을 환원하거나 부를 축적하지 않고 교육 등 사회의 공익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끔 해 주는 그런 일들을 하며 희년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믿는 회개 운동이 벌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희년은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방법도 되지만 현재 우리의 문제를 치유할 수 있다고 봅니다. 희년은 억눌리고 속박된 것에서 해방되는 것인데, 저는 희년은 오늘 우리의 현실에 있는 문제를 치유하는 능력 있는 복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해서 그들을 치유하고 회복시켜 정말 하나님이 주인 되시는 삶으로 살도록 하기 위한 제도가 희년입니다. 더는 노예로 살지 않고 자유인으로, 더는 속박을 당하지 않고 해방을 맛보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희년이죠. 희년이 지켜지지 않으면 다시 노예로 전락하게 됩니다. 희년이 지켜지지 않으면 다시 여러 가지 다른 것들에 의해서 억눌림당하고 갇히게 됩니다. 그래서 희년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와 동시에 치유와 회복을 끊임없이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저는 희년이 경제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민족 분단의 아픔과 우리 내부의 여러 가지 지역적 갈등과 양극화를 치유해 줄 수 있는 복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현재 한국교회는 의미 있는 많은 시도를 할 수 있는 충분한 자산이 있지만 마음이 없거나 방법을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목사님이 구상하고 계시는 시도에 대해 나누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방: 저는 목회를 하면서 만난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소박하게 살면서 은혜를 좀 나눌까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목회 현장에서 만났던 장애인, 독거노인, 혼자서는 살 수 없는 그런 사람들과 함께 목회 이후에도 함께 살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제 소박한 꿈을 알고 장애인 자녀와 함께 사시는 권사님이 집 한 채를 내놓으셨고 이걸 알고 또 다른 집사님이 땅을 천 평 정도 아주 싸게 주셨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복지 차원에서 한번 시작을 해 볼까 했는데 다른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기부 받은 땅을 공유화해서 땅 때문에 어떤 빈부 격차가 생기는 일이 없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같이 사는 사람은 희년 마을, 통일 후 우리 사회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대안 공동체로 소박하게 한번 시작해 보면 어떨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개인적으로 건물을 지으면 그 사람이 사유화하고 그 땅은 공유하며 토지에 대한 사용료를 내어 공동체에 필요한 재정으로 사용하고 의지할 곳 없는 소외 계층을 공동체가 함께 능력껏 도와주는 이런 공동체를 하고 싶습니다. 소위 말하는 희년 공동체를 해보려고 합니다. 통일 후가 되면 땅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공의롭고 공평한 경제구조를 갖고 행복하게 살까, 우리 사회의 소외 계층을 어떻게 도울 것인가가 매우 중요할 텐데 이런 시도들을 앞서 실험해 보고자 합니다.
이: 서구에서는 이미 지역 단위에서, 마을 단위에서 토지 가치를 공유하는 실험들이 많이 일어났고 현재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지만 아직 한국은 토지 가치를 공유하는 전위적 시도들이 많이 부족한데 목사님의 시도가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장기려 박사의 청십자 의료보험조합이 오늘의 의료보험 제도의 모태가 되었듯이 목사님의 시도가 한국의 주거 복지, 통일 운동 등에 있어 해결해야 할 토지문제를 푸는 중요한 실험이 되면 좋겠습니다.
방: 저는 한국의 토지문제를 희년의 정신으로 풀어내지 못하면 통일이 되어도 그것은 재앙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반도 공동체가 희년의 정신에 입각하여 토지문제를 해결해야 되는데 지금 남한에서는 희년적 토지제도의 도입이 거의 혁명적인 시도라 쉽지 않을 것 같아요. 통일이 되어서는 북쪽의 토지문제를 해결하면서 자연스럽게 희년적 토지제도를 시도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우리 남쪽에서 먼저 토지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실험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북한이 조만간 열리고 통일이 될 텐데 정말 희년의 제도를 도입할 수 있도록 우리가 정신 바짝 차려서 해야 될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한국교회가 이렇게 대형화되고 땅을 갖고 부를 축적하고 사람 수를 많이 모아서 왜곡된 신자유주의적 경제 흐름에 발맞추어 가면 복음에도 역행하는 일이고 한반도 땅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사명을 망각하는 일인 것 같아요. 한반도 땅은 희년의 공동체를 세울 수 있는 아주 귀중한 땅입니다. 희년을 회복하고자 하는 회개 운동이 남쪽에서 벌어지고 이 땅에는 하나님의 정의와 공평이 세워지는 희년의 구조를 만들어서 인류에게 평화의 복음을 전해 주겠다라고 하는 의지가 있다면 하나님께서 통일의 문도 열어 주시고 이를 통해서 희망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희년함께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 희년함께에 해 주실 말씀이 있다면.
방: 희년함께 식구들 아주 귀한 것 같아요. 토지문제를 연구해 오고 특별히 헨리조지의 진보와 빈곤을 위시한 이론을 탐구하고 공부하며 온 것은 정말 귀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약간 우려하는 것은 우리 희년함께 식구들이 지성주의로 빠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희년은 구체적인 삶입니다. 우리 희년함께가 이론을 충실히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 못지않게 희년을 살아 낼 수 있기 위해서는 현장성, 그러니까 개발 문제나 가난의 문제에 대한 현장, 정치인들이 토지문제나 양극화 문제, 복지 문제를 정말 희년에 맞게끔 정책으로 도입할 수 있도록 계속 도전해야 하는 현장. 이런 현장성이 희년함께에 요구되는 것 같아요.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지만 특별히 토지문제, 그런 현장이 벌어지는 곳에는 우리가 더욱 마음을 갖고 그런 사람들과 같이 울고 고민을 하고, 정책적인 면에서는 구청과 시에게 도전하고 얘기하는 현장성을 좀 가졌으면 좋겠다는 것이 제 바람입니다.
이: 한국교회에 해 주실 말씀이 있다면.
방: 교회에서는 목사가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목사가 권위주의적일 필요가 없고, 주인 행세할 필요가 없으며 다만 말씀에 집중해야 할 것 같습니다. 희년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을 잘 드러내기 위한 말씀에 충실한 목회자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말씀 사역에 집중하여 진정한 권위를 회복하는 목회자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자꾸만 교회를 크게 키우고 행정을 어떻게 하고 돈을 어떻게 하고 하는데 너무 관심을 많이 가지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성도들에게 구체적인 것을 많이 맡겨 줬으면 좋겠어요. 성도들에게 배우고, 성도들을 존중하는 정직한 목회자가 필요합니다.
한국교회가 이제는 예수가 살아 있는 교회와 예수는 죽고 탐욕이 가득한 교회로 극명하게 갈라지는 시점에 왔다고 봅니다. 다시 말해 복음이 있는 교회와 복음이 없는 교회로 구분 됩니다. 성도들도 교회 안에 복음이 있는가를 들여다볼 수 있는 마음과 깨어 있음이 필요합니다. 한국교회는 더 이상 하나님께서 인내하시기 힘든 지경까지 왔습니다. 정말 회개 운동을 벌이든지 그렇지 않으면 종교개혁과 같은 새로운 교회 운동이 일어나든지 해야 하는 시점이 왔습니다. 회개 운동을 벌이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징계의 채찍을 드실 것이고 새로운 교회 운동이 곧 태동될 것입니다. 스스로 회개하고 정말 희년의 주인공이신 예수님 앞에 나아가는 대 회개 운동이 벌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교회는 제의적, 종교적 예배를 드리는 공동체라기보다는 삶을 살아 내는 공동체입니다. 초대교회 공동체는 희년의 공동체였고 희년의 삶을 살아 내는 공동체였습니다. 각자가 1주일 동안 하나님과 어떻게 살았는가를 나누기 위해서 모인 것이고 어떻게 하면 희년의 삶을 살아 낼 것인가를 서로 고민하는 장이 교회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반성하기도 합니다. 예배는 희년의 삶을 살고자 하는 공동체를 드리는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주일날 예배드리고 세상으로 가서 맘대로 욕심껏 사는 제의적 공동체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고 진정으로 행복한 희년의 삶을 회복하는 한국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마지막으로 기도 부탁하실 것들이 있다면.
방: 저는 여러 가지 사역이 많아서 영성 있는 목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영성은 '삶에서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현장에도 많이 나가고 바쁜 삶을 사는데 하나님과 동떨어져 있고, 자칫 저의 의로, 제 힘으로 하게 되면 영성이 없어지게 되고 메말라지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친밀함, 성령의 경험이 늘 나에게 끊이지 않아서 그리스도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평화, 그리스도의 생명력이 나에게 지속적으로 약동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제 기도 제목입니다. 자칫 메말라지거나 나의 의가 드러나거나 인간적인 모습이 드러나게 되면 결국 예수 그리스도가 가리게 되니까 올해는 영성 있는 목회자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기도 제목입니다.
원문보기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367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