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오세택 칼럼] 진정한 개혁, 자기 들여다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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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12-04-10 14:23 / 조회 2,995 / 댓글 0본문
진정한 개혁, 자기 들여다 봄
오세택 공동대표/두레교회 목사
고난주간과 부활주일을 지내면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 계속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던 생각은‘예수님 당시 유대 사람들이 왜 주님을 거부했을까?’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에 동안 수많은 표적과 기사를 행하셨습니다. 각색 병든 자들을 고치시고 귀신들린 사람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기도 하고 심지어 죽은 자들을 다시 살리기도 하셨습니다. 이 정도면 하늘 권세로 오신 분으로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아임을 알아야 할텐데 빌라도가 세 번이나 무죄라고 선언했지만 죽음으로 몰아갔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유대인들이 꿈꾸는 메시아상이 따로 있었습니다. 그들이 꿈꾸며 기다렸던 메시아는 자기 민족적인 자존감을 회복하고 확장할 수 있으며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싶은 욕망을 보장할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한 때 주님을 따라 다니기도 했고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는 큰 기대를 갖고 호산나라고 환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를 거부하고 십자가에 못 박도록 한 것은 그의 가르침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입만 열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오른뺨 친 자에게 왼뺨도 돌려대라, 억지로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따라 가라, 속옷을 달라고 하면 겉옷까지 벗어주라, 높은 자리에 앉지 말고 낮은 자리에 앉으라, 손님을 초대해서 대접하려면 아무 것도 되갚을 것이 없는 자를 초청해라, 보물을 하늘에 쌓아라, 부자가 천국 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로 통과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라고 했습니다. 그 중 결정적인 말씀은‘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고 결국 그들로 하여금 주님을 부정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의 생각하는 메시아상 때문에 주님을‘신성을 모독한 자로 죽음에 처할 자’(막14:64)라는 말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 때문에 예수님에게 가시관을 만들어 씌우고 막대기로 치고 그 얼굴에 침을 뱉고 조롱하는 행동을 낳았습니다. 이 말과 행동들 때문에 예수님은 골고다에서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부정하고 거부했던 이유는 그들의 말과 행동이었으며 그 말과 행동은 그들이 갖고 있던 메시아에 대한 생각 때문이고 그 생각은 그들의 욕망으로부터 왔습니다.
진정한 개혁을 위해서는 우리의 말과 행동을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과 행동을 낳는 생각을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그 생각이 어디로부터 왔으며 무엇에 근거를 두고 있는지를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이런 들여다봄이 없이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간단하게 점검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하신 말씀에 내가 얼마나 기쁨으로 동의하는지, 은혜를 받고 있는지를 보면 됩니다.‘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눅9:23)는 바로 이 말씀입니다.
오세택 공동대표/두레교회 목사
고난주간과 부활주일을 지내면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 계속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던 생각은‘예수님 당시 유대 사람들이 왜 주님을 거부했을까?’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에 동안 수많은 표적과 기사를 행하셨습니다. 각색 병든 자들을 고치시고 귀신들린 사람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기도 하고 심지어 죽은 자들을 다시 살리기도 하셨습니다. 이 정도면 하늘 권세로 오신 분으로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아임을 알아야 할텐데 빌라도가 세 번이나 무죄라고 선언했지만 죽음으로 몰아갔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유대인들이 꿈꾸는 메시아상이 따로 있었습니다. 그들이 꿈꾸며 기다렸던 메시아는 자기 민족적인 자존감을 회복하고 확장할 수 있으며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싶은 욕망을 보장할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한 때 주님을 따라 다니기도 했고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는 큰 기대를 갖고 호산나라고 환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를 거부하고 십자가에 못 박도록 한 것은 그의 가르침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입만 열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오른뺨 친 자에게 왼뺨도 돌려대라, 억지로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따라 가라, 속옷을 달라고 하면 겉옷까지 벗어주라, 높은 자리에 앉지 말고 낮은 자리에 앉으라, 손님을 초대해서 대접하려면 아무 것도 되갚을 것이 없는 자를 초청해라, 보물을 하늘에 쌓아라, 부자가 천국 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로 통과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라고 했습니다. 그 중 결정적인 말씀은‘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고 결국 그들로 하여금 주님을 부정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의 생각하는 메시아상 때문에 주님을‘신성을 모독한 자로 죽음에 처할 자’(막14:64)라는 말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 때문에 예수님에게 가시관을 만들어 씌우고 막대기로 치고 그 얼굴에 침을 뱉고 조롱하는 행동을 낳았습니다. 이 말과 행동들 때문에 예수님은 골고다에서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부정하고 거부했던 이유는 그들의 말과 행동이었으며 그 말과 행동은 그들이 갖고 있던 메시아에 대한 생각 때문이고 그 생각은 그들의 욕망으로부터 왔습니다.
진정한 개혁을 위해서는 우리의 말과 행동을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과 행동을 낳는 생각을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그 생각이 어디로부터 왔으며 무엇에 근거를 두고 있는지를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이런 들여다봄이 없이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간단하게 점검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하신 말씀에 내가 얼마나 기쁨으로 동의하는지, 은혜를 받고 있는지를 보면 됩니다.‘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눅9:23)는 바로 이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