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안현식 칼럼] 교회 개혁, 일반 신도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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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11-04-06 16:58 / 조회 3,994 / 댓글 2본문
한국교회 문제에 대해 공동체적 책임 필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의 금권 선거가 도마 위에 올랐다. 그동안 한국교회의
부패 정도가 심각히 진행되어 이제는 수술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한국교회의 부패 상황은 개신교 역사상 최악의 상황이라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교회사 전체로 본다면, 중세 교회의 부패 심각성은 종교개혁 당시의 면죄부, 성직 매매 등 알려진 바와 같다. 그러나 종교개혁 이후의 세계
개신교 역사 속에서 금권 선거를 비롯한 교회 지도자들의 윤리적·도덕적 부패의 정도가 이렇게 심각한 적이 없다는 점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교회가 어떻게 이 지경이 되었는가 하며 한탄의 소리부터 나온다. 예수님의 몸이 되는 교회가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안타까운 상황에 대해 아픔을
느낀다. 한국교회의 신뢰도도 땅에 떨어진 지 오래다. 한국의 3대 종교 중에서 신뢰도는 가장 낮은 상황이다. '고뇌스러움'을 떠나 고통스러운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나는 과연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가를 묻는다. 물론 어떤 이들은 교계 지도자들과 목회자들, 장로들과 같은 지도자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일반 신도(평신도보다는 일반 신도가 더 성경적인 명칭이다)들은 여기에 책임이 없는가? 그렇지 않다.
기본적으로 한국교회를 구성하는 모든 이들이 여기에 대한 연대적 책임이 존재한다. 한국교회의 문제는 한국교회 공동체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나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공동체적 책임을 물으신다
성경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러한 공동체적 연대성은 신구약을 관통하면서 맥락적으로 뚜렷이 등장한다. 구약은 이스라엘의 공동체에 대한 하나님 언약의
역사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고 그 명령을 행하면 복을 내리시겠다는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복을 주시는 것과
벌을 내리시는 것은 대부분 집단적으로 이루어진다. 공동체적 책임을 묻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 속에서 심판은 개개인에게도 이루어졌지만,
기록된 말씀은 오히려 공동체적 심판에 대한 내용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더욱 심각히 고민하게 되는 것은 그 공동체 중에서도 기득권층이 종교적이거나 사회적으로 부패하여 내려지는 집단적 심판의 내용이다. 소선지서를
중심으로 보면 가난하고 힘없는 자를 착취하고 억압하는 이스라엘 공동체에 벌을 내리시는데, 그 벌은 집단적으로 이루어진다. 가령 공동체 안에서
부패한 자들은 그 응분의 벌을 받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면서 착취당하고 억압당한 자들 또한 그 공동체의 벌을 집단적으로
함께 받는다. 이것은 약한 자들의 이중적 고통이다. 일반적으로 그 공동체에 대한 심판의 결과로 약한 자들이 더욱 고통을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심판의 결과로 나타난 전쟁에서 힘없는 사람들은 전쟁에 끌려 나가야 했고, 또 전쟁의 맨 앞에서 싸우다가 죽는 비극적 현상을 생각할 수
있다.
신약에서 예수님은 공동체를 향해 외치신다.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대한 회개의 요청과 저주의 말씀은 한 개인이 아니라 그 집단을 향한
외침이었다. 예수님의 말씀은 개인적인 말씀이 많지만 동시에 이스라엘을 공동체적으로 회개시키고자 했다. 이에 대한 거부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죄악은 그 민족이 공동체적으로 받게 됐다. 서신서와 묵시서에 나타난 메시지도 개인보다는 교회 공동체를 향한 것이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한국교회의 문제에 대한 책임이 있는 존재라는 것을 각성해야 한다. 내가 비록 교회를 구성하는 한 일반 신도라 하더라도,
한국교회 전체에 대한 책임은 기본적으로 최소한 1/n만큼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에 대한 책임은 한국교회 구성원으로 회귀되는 것이지 다른 대상이나
다른 나라의 교회에 있는 것은 아니다.
교회 개혁 운동에 일반 신도들도 적극 참여해야 할 때
그렇다면 한국교회의 부패 상황에 대해 일반 신도인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할 수 있다. 일반 신도는 교회 지도자들의 부패 사건을
직접 접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기도하는 것으로만 만족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기도하지 않았던가? 한국교회를 위해 많은 기도가 이루어져 왔다.
한국교회는 개혁되어야 한다는 원론적 글들과 문제점을 진단하는 많은 글 또한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글과 구호는 교회의 소수
목회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을 뿐 그 노력은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이제는 일반 신도들도 참여해야 한다. 어떤 이들은 한국교회가 구조적으로 목회자들에 의해서 갱신할 수 없기 때문에 일반 신도들이 관심을 두고
일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일반 신도는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한국교회에 대해 책임 있는 존재로서 각성이 이루어졌다면 그 다음은
무엇을 할 것인가?
필자는 일반 신도가 한국교회의 갱신을 위해 할 수 있는 강력한 일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기독 NGO(비정부기구)에
참여하는 일이다. 이미 한국교회 안에는 광범위하게 영역별로 기독 NGO가 존재한다. 소수의 뜻있는 분들이 그 일을 이미 시작했다. 전국적으로
다양하게 교회 개혁 관련 운동에 참여할 수 있다. 필자가 속한 '교회개혁실천연대'와 지방 모임인 '부산교회개혁실천모임'이 그 예다. 참여 방식도
다양하다. 온라인 회원에 가입하는 것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회원에 가입하고 각종 행사에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참여하면
된다. 그 다음은 적극적으로 그 운영에 참여하는 것이며 회비를 납부하는 것이다.
이것은 생각만큼 힘든 일도 아니며 극한 희생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아주 적은 것이면 충분히 시작할 수 있다. 직장과 가정생활, 교회 생활을
다 하고 남은 시간으로도 충분히 시작할 수 있다. 혹시 여기에 대한 특별한 사명이 있는 사람은 그 단체의 운영에 구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더
적극적으로는 관심 있고 사명이 있다고 하는 영역에 대한 운동이 존재하지 않으면 별도의 기독 NGO를 시작할 수 있다. 온라인 매체에 익숙한
우리가 조금만 관심이 있으면 한국교회의 갱신에 참여할 수 있다.
기독 NGO도 문제는 있지만…활발한 공론화 과정의 단계로 개혁 요구해야
물론 기독 NGO도 문제가 없을 수 없다. 다 연약한 인간의 집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기독 NGO는 투명성·개방성·공론성·민주성·정당성을
담보로 한다. 모든 개인적·집단적 이익이 배제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 단체는 존재해야 할 의의가 없다. 그 단체의 갱신을 요구하거나
그렇게도 안 될 경우 탈퇴하면 된다.
기독 NGO의 장점은 교단과 교파를 초월하며 회원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반 신도나 목회자나 동일한 자격과 권한으로 참여할 수 있다.
특정 교단 소속이라고 배제하거나 옹호하지 않는다. 소위 기독교 시민사회로 통하는 '공론장'을 형성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활발한 공론화 과정을
통해 문제를 제기하고 개혁을 요구할 수 있다.
'한기총해체를위한기독인네트워크'는 한기총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스스로 해체하게 하려고 여러 기독 NGO들이 연대한 모임이다. 이 운동의 목적인 '한기총
해체'가 이루어지도록 그리고 한국교회가 보다 바르게 세워지며 한국 사회의 희망이 되는 위치를 회복하도록 기도해야 한다. 동시에 이 운동을 통해
한국교회의 많은 일반 신도가 한국교회의 부패 상황에 대해 인식하고 여기에 책임 있는 존재라는 것을 각성하고 개혁에 대한 의지를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실천한다면, 그 자체가 바로 이 운동의 중요한 의의라고 할 수 있다.
한국교회를 위한 기도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동안 나 자신과 내 교회만을 위해 기도했다면 이제 그 범위를 한국교회로 확장시켜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한국교회에 대한 공동체적 책임을 져야 하는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또한 더욱 겸손한 자세와 한국교회를
사랑으로 부둥켜안는 마음으로 이 일을 하나하나 실천해 가야 할 것이다.
안현식 / 동명대학교 교수·부산교회개혁실천모임 대표 (http://cafe.daum.net/bcr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