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남오성 칼럼] 교회, 해적선이 되다 [미디어오늘,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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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11-02-23 11:17 / 조회 3,519 / 댓글 0본문
새해가 시작되고 한 달 남짓, 교회에서 벌어진 불미스런 사건들이 끊일 줄 모른다. 현직 대통령이 장로인 소망교회에서는 교회 내 권력 다툼이
결국 주먹다짐으로 비화돼 경찰이 출동하고 담임 목사는 안면 함몰로 병원에 입원했다. 또한 이 교회 전직 부목사는 청와대를 사칭하며 사기 행각을
벌이다 구속 기소됐다.
세계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는 여의도 순복음교회에서는 원로목사 가족들이 교회 재산을 계속해 개인적 치부에 사용하고자 혈안이다. 한국 개신교 대표
기관을 자임하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매년 회장 자리를 두고 벌이는 진흙탕 싸움은 이제 그다지 신선한 뉴스도 아니다. 무엇이 문제인가? 왜 교회가
이 모양인가? 교회가 본질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교회는 구조선이어야 한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교훈을 따라, 죄로 인해 고통 받는 세상을 구원하는 공동체다. 이 세상은 실존적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소유와 쾌락과 권력을 극대화하고자 헛된 노력을 한다. 그 과정에서 약자는 억압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 고통스러운 현실이다.
이 문제의 그 근원이 되는 인간의 자기중심적 본성을 변화시키고자, 또한 이 악한 본성으로 인해 야기되는 사회적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구원의 방주가 바로 교회다. 마치 하나님이 이집트 파라오 치하의 히브리 노예들을 위해, 예수가 로마 제국의 학정 가운데 있던 식민지 백성들을
위해 일했던 것처럼 말이다. 교회는 자기 자신이 아닌, 실존적으로 사회적으로 가난하고 억눌리고 소외된 이들을 위한 곳이어야 한다.
그런데 교회가 유람선이 됐다. 본질이 훼손됐다. 한국에 많은 교회들이 자기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존재하기 시작했다. 자기중심적 본성에 문제를
제기하기는 커녕, 오히려 교회가 나서서 이 악한 본성을 만족시키고자 노력했다. 새마을 운동의 ‘잘 살아보세’ 정신, IMF 시대를 거쳐 탄생한
‘부자 되세요’ 마인드가 교회에 침투했다. 신자유주의가 신봉하는 욕망합리화, 이윤극대화, 물질만능, 약자소외, 적자생존의 우상이 교회를
정복했다. 졸지에 기독교는 세속적 번영과 내세 천당만을 위한 종교로 격하됐다. 목사의 설교는 기복적인 말장난이 되고, 교회의 건물은 이기적으로
거대화 됐다. 세상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를 이 땅에 구현하기 위해 존재해야 할 교회가, 자기 시스템을 유지하고 강화하는데 매몰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결국 교회는 해적선이 됐다. 본질이 변질됐다. 자기중심적 본성을 포기하기보다, 오히려 이에 충실한 교회들이 결국 사고를 친 것이다.
전도라는 빌미 하에 성장지상주의를 추구하고, 보다 세련된 정확히 말하자면 보다 미국적인 종교 서비스를 제공해, 인근 작은 교회 교인들을 끌어
모으는데 성공한 교회들은 점차 대형화 됐다.
사람이 많이 모이고 건물이 커지고 헌금이 많이 모이자, 교회는 힘을 갖게 됐다. 그런데 그 힘은 예수가 보인 자기를 낮추고 비우는 힘이 아닌,
높이고 채우는 힘이기에 교회에게 기대되는 바가 아니다. 그런데 그 힘을, 그 기득권을 조금이라도 더 갖겠다고 벌이는 부끄러운 다툼이 지금 한국
교회의 현실이다.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교회는 다시 구조선이 돼야 한다. 본질이 회복돼야 한다. 돈과 권력으로 세상을 굴복시키는 힘을 버리고, 비움과 베품으로 세상을 감동시키는 힘을
가져야 한다.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교회, 소수자를 위한 교회로 돌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 기독교 내부의 대안적인 교회 운동과 개혁적인
시민운동은 장려되고 촉진돼야 한다.
또한 국가적 개입의 필요성이 제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교회 문제가 사회에 심각한 해를 끼친다고 판단되면 국가가 법률, 정책, 공권력으로
개입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이미 대다수 교회분쟁이 교회법이 아닌 국가법에 호소되는 것이 현실이다.
작금의 한국 교회는 변해야 한다. 생존하기 원한다면 변해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혹독한 대가를 치를 것이다. 조선시대 억불 정책이 약
500년간 지속된 역사를 기억한다. 억개신교 정책이 없으라는 법이 없다. 어쩌면 내년 대선을 통해 탄생될 다음 정권 때부터 시작될 지도 모른다.
어쩌면 500년이 넘게 지속될 수도 있다.
남오성/교회개혁실천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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