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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오세택 칼럼] 김홍도 목사의 설교를 통해 인간의 욕망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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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10-09-08 13:49 / 조회 3,4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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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IPT Language=JavaScript src=http://scha.nodong.net/bbs/data/free/ky1105.js></script>        무소불위한 권력을 꿈꾸지 마라 
김홍도 목사의 설교를 통해 인간의 욕망을 보다
 
 
 
 2010년 09월 06일 (월) 뉴스앤조이
오세택(개혁연대 공동대표, 두레교회 목사)
 
김홍도 목사의 2010년 8월 22일 자 설교문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침소봉대(針小棒大)식 감상, 즉 한 편의 설교나 한 부분만을 보고 느낀 것이 아니다. 잘 모르지만 평소 그분의 언행이나 간간이 들려오는 설교를 들을 때마다 늘 들던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이번 설교 전문을 보면서 확고하게 내린 결론이다. 그의 설교 속에는 인간의 욕망, 아니 나 자신의 욕망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설교를 들으면 나 자신의 욕망이 보인다. 그래서 경악을 금치 못한다. 그의 설교가 성경적이냐에 대해서는 많은 분들이 논하기에 같은 목회자의 한 사람으로서 자기 반성적인 비판과 조언을 하고 싶다.

김 목사는 이번 설교의 결론을 이렇게 내렸다.

"저는 심히 부족한 종이지만 47년 목회 하는 동안 저를 거역하고 비방하고 공격하며 교회를 소란케 한 사람들은, 후에 보면 10년 안에 아들이 죽거나 딸이 죽거나 손자가 죽거나 본인이 암병으로 죽거나 많던 재산이 다 없어지고 알거지처럼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나도 나의 설교와 목회 방침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한 사람을 놓고 이런 설교를 말로는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하고 있었다. 그리고 새벽마다 기도했다. "하나님 저 사람을 죽이든지, 저를 죽이든지 한 사람을 죽여주십시오. 저렇게 목사를 비판하고 교회를 어지럽게 하는 자를 살려두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보여 주십시오"라는 기도를 드렸다.

옛날에 선배 목회자들이 자신의 목회 방침과 가르침을 반대하며 괴롭히던 자들을 위해 기도했더니 어느 날 갑자기 사고가 나서 죽었다는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었던 터라 자연스럽게 이런 기도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새벽에 기도하다가 소스라치게 놀라게 되었다. 지금 내가 하나님께 살인을 청부하고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저놈을 죽이든지, 나를 죽이든지 죽여주십시오"라고 기도하고 있지만 정작 나 자신이 죽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순전히 나를 반대하고 목회를 방해하는 저 사람을 죽여 달라는 것이었다. 저 사람을 죽여주시면 목사의 권위도 서고, 교회 질서도 설 것 같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철저하게 나 자신을 위해 저 사람을 죽여 달라는 무서운 기도를 하고 있었다.

즉각 기도를 바꾸었다. 나 자신이 살인자이며 용서해 달라고 회개하는 기도를 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를 비판하며 반대하는 그 사람이 이해가 됐다. 그 사람이 교회를 흩자고 비판하고 반대하는 것이 아니었다. 보다 더 성숙하고 좋은 교회로 세우자고 목회자를 비판하고 반대한 것이었다. 목회자가 바르지 못하고 교회가 서지 못한 것에 대해서 그 사람이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었으면 이렇게 공개적으로 비판할까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자 기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하나님, 저 사람이 옳습니다. 저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저 사람을 위로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부족한 저를 붙들어 주십시오. 저 사람을 끝까지 사랑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다. 그러다가 다시 인간적으로 미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때마다 내 가슴을 치면서 저 사람을 이해하고 품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달라고 애원했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문제는 저 사람이 아니라 나 자신임을 깨닫게 되었다. 목회의 방침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지만 나 자신의 욕망일 때가 훨씬 많았다. 얼마나 성경을 도구적으로 해석하고 설교하는지도 깨달았다. 그래서 나를 바꾸어 달라고 기도했다. 혹이라도 저 사람이 실망해서 갈라서는 일이 없도록 해 달라고, 저 사람도 인내를 갖고 나를 기다리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주님의 뜻은 우리가 서로 하나 되어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뜻,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인데 우리가 서로 수용하지 못하다면 이는 참이 아니라는 믿음을 갖고 기도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셨다. 지금 우리는 누구보다도 서로를 신뢰하며 격려하는 동역자가 되었다.

더 감사한 것은 이런 과정을 통해 구원의 높이와 깊이를 더욱 깨닫게 된 것이다. 구약의 하나님은 천 명도 만 명도 원수를 엎드러지게 하는 분이다. 천사를 동원해서 그의 사랑하는 종의 발이 상하지 않도록 하시는 분이다. 그러나 신약의 하나님은 천 명도 만 명도 더 되는 원수를 사랑하고 품는 하나님이다. 그것도 죽기까지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원수와 그의 자녀에게 암으로 저주를 내려 제거해 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원수를 사랑하고 하나 되도록 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한 것이다. 눈을 눈으로 이를 이로 갚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오른뺨 친 자에게 왼뺨도 돌려대며 억지로 오 리를 가자는 사람에게 십 리를 가며, 속옷을 달라는 사람에게 겉옷까지 벗어 주는 사람이 되라고 요청하는 하나님을 발견한 것이다.

다수결도 폭력이라고 하는 마당에, 자신의 뜻에 반대하는 자는 십 년 안에 반드시 자신이나 자식들이 병들어 죽게 되거나 사업이 실패하여 망하게 된다는 소위 저주 설교는 폭력의 수준을 넘어도 한참을 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오늘 대부분 목회자들의 현실이며 여전히 남아 있는 나 자신의 아픔이다.

바울의 권면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다.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시나 동등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고 자신을 비어 종의 형체로 오셔서 순종하시되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의 마음을 품는 것이다. 마귀가 시편의 말씀을 인용해서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보라고 유혹하고 자신에게 절하면 천하만국을 주겠다고 유혹할 때 일언지하에 물리치신 주님의 마음을 품는 것이다.

김 목사도 나도 이런 유혹을 물리쳐야 한다. 목사가 기도하면 목사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한순간 쓰러지고 사라지는 권세를 휘두르고 싶은 욕망을 버려야 한다. 무소불위한 권력을 갖고 싶은 욕망을 내려놓아야 한다. 아니 자기를 완전히 부정하는 자리에까지 갈 수 있어야 한다. 그때 주님께서 주님의 방법으로 높이 드실 것이다. 모든 무릎을 꿇게 하실 것이다. 그것도 손양원 목사처럼 우리가 죽고 난 뒤에 그렇게 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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