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박득훈 칼럼] 하나님나라의 관점에서 본 한미FTA(1)[뉴스앤조이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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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관리자 / 작성일08-02-27 10:59 / 조회 4,037 / 댓글 0본문
한미FTA 협상은 한국 사회에 치열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많은 논쟁점이 있지만 본 논문에서는 한미FTA가 가져올 양극화 현상에 초점을 맞춰 하나님나라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성찰해보고자 한다. 이와 관련하여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곤혹스러움을 느끼고 있다. 우선 사실관계에 관련해서 한미FTA가 체결되면 과연 사회적 불평등 즉 사회적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인가에 대하여 혼돈스럽다. 찬반론자들의 주장이 다 그럴듯해서 어떤 입장을 받아들여야 할지 판단이 잘 서질 않는다. 둘째, 신학적 윤리와 관련해서 그리스도인은 다양한 층위의 평등과 불평등에 대하여 어떤 입장을 취해야할지 자신이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은 중립적인 입장에서 침묵과 관망의 자세를 취한다. 이런 입장이 우리를 편하게 해줄 수 있을 것 같지만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다. 중립적 입장은 실질적인 면에서 한미FTA 체결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정치․경제계의 기득권세력에 동조하는 효과를 낳기 때문이다. 힘들더라도 그리스도인들은 한미FTA가 자신들에게 던지는 질문들을 정면으로 대면하여 그리스도인의 관점에서 입장을 정리하고 그에 따라 응답해야 한다.
이를 위해 첫째,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사실관계를 파악해야하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둘째, 첫째 항목에서 채택된 분석방법에 의거하여 한미FTA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에 대하여 분석해본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인은 한미FTA가 심화시킬 사회적 불평등 즉 양극화에 대하여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 것인가를 고찰해보려고 한다.
1. 사회적 약자의 관점과 사실관계파악의 연관성
특정한 경제현실 속에서 윤리적 실천방향을 설정하려면 우선 그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한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한미FTA에 대하여 바르게 윤리적 입장을 정하고 실천에 참여하려면 우선 한미FTA가 도대체 한국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하여 최대한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어떻게’이다.
1.1. 사회분석적 매개의 필요
정치․경제적 현상을 최대한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선 사회분석적 매개를 반드시 사용해야 한다. 경제현실의 총체적 진상은 단순히 주관적이고 직접적인 경험에 의해서 파악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관찰자 자신이 이미 경제현실의 일부를 형성하고 있을 뿐 아니라 경제현실은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특정인의 직접적인 지식만으로 그 사실의 총체를 파악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론적 분석도구를 적절히 사용할 필요가 있다.
또한 존 밀뱅크나 스탠리 하우어와스 같은 현대 기독교공동체주의자들처럼 모든 사회과학적 분석도구를 거부하고 신학을 특히 그 중에서도 교회론을 사회와 경제 현실을 비판적으로 읽어낼 수 있는 메타담론(metadiscourse)으로 설정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물론 신학을 메타담론으로 간주하는데도 긍정적인 점이 없는 바는 아니다. 해방신학에서처럼 특정 사회분석도구를 지나치게 절대화하여 신학적 사회비전과 특정사회이념을 일치시키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제어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반면 특정한 사회분석도구에 담겨 있는 사회적 비전과 가치가 신학적 메타담론에 담겨있는 절대적 정의의 경지에 미치지 못한다고 가볍게 무시하고 이상주의적 접근에만 몰두하게 만드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세속 사회의 경제현실을 비록 완벽하지는 못할지라도 최대한 하나님나라의 비전에 가깝게 접근하도록 변혁시켜나가는 것에도 신학적 의미가 담겨 있다. 올리버 오도노반이 잘 지적한 것처럼 온전하지 못한 세상에서 하나님나라의 정의를 추구해야 할 그리스도인에게 타협과 절충은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존재의 법칙’이다. 즉 세속사회에 참여하여 변화시켜나가기 원하는 그리스도인에게 ‘모든 윤리적 결단은 충실성(faithfulness)과 절충(compromise)사이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다’. 부룬너가 잘 지적한데로, 예수님 자신도 모세가 이혼을 허락한 것이 하나님의 창조질서에는 못 미치는 것이지만 마음이 완악한 인간을 다스려야 하는 시민법의 영역에서는 정당했다는 점을 인정하셨다. 그러므로 공적인 영역에서는 실현가능성을 감안하여 상대적 정의를 추구하는 것이 ‘편의의 문제가 아니라 원칙의 문제’인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인은 세속사회로부터 스스로를 완전히 고립시켜서는 안 되기 때문에 세속사회의 현재 모습을 사실상 그대로 지지하던지 아니면 최선을 다하여 개혁에 힘써야 할 것이다. 당연히 후자 즉 상대적 정의 추구가 명백히 우리의 선택이 되어야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상대적 정의를 추구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과연 우리가 세상의 빛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마 5:13~16; 6:33). 우리는 이 사명을 상당히 소극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미국의 저명한 신학자인 스티븐 모트는 성경에서 빛은 어둠과 대항에서 싸우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힘을 나타낸다고 말했다. 그는 이사야 9장 2~7절에 주목하면서 빛의 역할은 바로 ‘피 흘리는 전쟁터에서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는 것이요 정의를 세우는 것임을 역설하였다’. 이렇게 볼 때 ‘세상의 빛’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대안적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세워나가는 것 뿐 아니라 세상의 정치․경제체제를 하나님의 정의에 비추어 개혁해 나가는 적극적인 사명도 포함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사회경제현실의 상대적 진보와 발전이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할 사명 중에 하나라는 것이 분명하다면 이를 위해 그리스도인은 사회과학적 분석도구를 적극적으로 그리고 적절히 사용해야 한다.
1.2. 선택기준: 사회적 약자의 관점과 과학적 역량
사회분석도구를 사용하려고 할 때 그리스도인은 너무나 다양한 이론들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한 이론들을 평가하여 취사선택하거나 적절히 종합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해방신학자 클로도비스 보프는 두 가지 기준을 적절히 제시한다. 하나는 각 사회분석도구가 내재하고 있는 윤리적 관점이요, 다른 하나는 그 도구가 보여주는 과학적 역량이다.
기독교인이 당연히 선호해야할 윤리적 관점은 사회적 약자의 관점이다. 이는 결코 과학적 중립성을 훼손하는 일이 아니다. 어차피 모든 사회과학적 분석도구의 맨 밑바닥에는 일정 정도의 윤리적 선택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사회과학적 이론들이 윤리적 측면에서 중립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판이다. 실제로 경제현실을 중립적으로 파악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경제적 관계는 생산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 간의 사회적 관계에 의해 결정적으로 규정된다. 자본주의로 말하자면 자본과 노동의 관계가 가장 결정적인 관계이다. 노동조합의 발전으로 노동의 힘이 자본주의 초기보다 강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노동에 대한 자본의 우위는 기본적으로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 역학관계 위에 형성되는 경제현실을 힘과 아무런 관련 없이 중립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심각한 착각이요, 오류가 아닐 수 없다.
예컨대 탈윤리적 입장을 견지한다는 의미에서 소위 순수경제학이라 불리는 주류 자본주의경제학의 저변을 살펴보면 허경회가 잘 지적한 것처럼 문명구조 차원에선 효용주의가, 경제조정차원에서는 자유주의가 그리고 경제규범차원에선 이윤 복음주의적 체계를 절대화하는 개인주의 윤리가 매우 견고하게 장착되어 있다.
이 모든 것은 사실상 경제적 강자에게 유리한 윤리적 이념체계이다. 그럼에도 순수경제학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그 경제학이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는 경제현실이 강력한 정치적 힘과 시민사회의 헤게모니에 의해 지지 받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정치적 힘과 시민사회의 헤게모니가 너무 강력한 나머지, 아무도 도전할 수 없는 일종의 주어진 자연법칙처럼 간주되고 있을 뿐이다. 역설적이게도 현재의 자본주의체제에서 큰 성공을 거둔 조지 소로스조차 순수경제학에 담겨 있는 기계적 세계관에 우려를 표명하였다: ‘경제학의 균형이론의 근저에는 그 이론이 물리학과 유사하다는 가정이 있는데 이는 그릇된 유비이다’.
그렇다고 사회적 약자의 관점으로 경제현실을 분석하는 자체가 과학적 정확도를 충분히 보장한다는 말은 아니다. 여전히 과학적 역량 즉 최대한 종합적이고 세밀한 이론의 틀을 만들고 그에 기초해 실증적 분석을 하고 합리적으로 논리를 전개해가는 능력을 극대화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에 앞서 사회적 약자의 관점을 취하는 것은 최소한의 필요조건임에는 틀림없다.
같은 현실이라도 누구의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리 이해되기 때문이다. 한미FTA가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을 분석할 때 이미 경쟁력을 갖춘 자의 입장에서 보면 무역장벽이 사라지고 시장이 넓어지기 때문에 얻게 될 이익에 집중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약자의 입장에서 보면 시장개방으로 말미암아 겪어야 될 고통과 다양한 피해에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다. 강자의 입장에서 분석하면 결국 약자들이 단기적으로 고통당하거나 희생함으로써 전체를 살릴 수 있고 장기적으로 보면 그로 말미암아 더 큰 이익에 약자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평가를 내놓을 것이다. 그러나 약자의 입장에서 분석하면 고통의 대부분을 약자가 분담하도록 하는 것 자체가 정의롭지 못할 뿐 아니라 약자들이 장기적으로 이익을 볼 것이라는 것도 불확실하거나 그 반대일 확률이 더 높다는 전망을 내놓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일단 약자의 입장에서 분석한 결과에 예민하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나님 자신이 그런 시각에서 현실을 바라보시기 때문이다. 애굽경제의 노예제도는 바로로 대변되는 기득권자들이 분석할 때 애굽경제의 총체적 효율성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최적의 탁월한 제도로 평가되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고통당하는 노예 백성인 히브리인들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시고 그들의 입장에서 바라보셨다. 노예제도가 애굽경제의 총체적 효율성을 증가시켰다고 해도 그것이 노예들의 착취와 억압에 바탕을 둔 것이었기에 정의롭지 못한 것이고 극복의 대상으로 간주하셨다.
하나님은 히브리인들을 바로의 정치경제 체제에서 해방시키시고 가나안에서 완전히 새로운 정치경제제도를 실현케 하셨다. 그 제도는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를 철저히 보장하고 확보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희년법은 사실 50년 동안 열심히 노동하고 절약해서 땅의 소유지분을 확장한 사람의 입장에서 얼마나 부당한 법인가? 하지만 하나님은 땅을 잃은 가난한 사람과 그 자녀들의 입장에서 제도를 확립하셨다. 이것이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경제정의의 핵심사상이다.
물론 우리가 처해있는 역사적 사회현실을 감안할 때, 소위 순수경제학적 분석결과를 무조건 배척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비판적으로 성찰하여 최소한의 수용할 부분만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당연히 사회적 약자의 관점을 충분히 반영하려고 노력한 사회분석에 대하여 더 깊은 관심을 보여야 한다.
1.3. 이론과 사실의 상호관계
이 점에서 얼마 전 연합뉴스와 가진 특별회견에서 제시한 노무현 대통령의 한미FTA를 반대하는 진보진영에 대한 비판적 논평은 매우 유감스러운 내용을 담고 있다. 그 핵심은 ‘현실을 봐야 하며 객관적 사실을 인정해야 하며 이론과 사실이 다르게 갈 때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좀더 구체적으로 한미FTA를 반대하는 이론적 근거인 종속이론은 한국사회에 맞지 않는 것임으로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종속이론의 실패이유에 대한 노대통령의 잘못된 이해, 그리고 종속이론의 실패가 한미FTA의 추진을 정당화한다는 그의 주장의 오류에 대하여는 이근 교수가 잘 지적했기 때문에 반복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노무현 대통령이 이런 실수를 범한 것은 대부분의 현대인들처럼 너무 쉽게 이론과 사실의 단순한 이분법에 안주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물론 이론과 사실의 세계는 서로 완전히 중복되는 영역은 아니다. 하지만 둘을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밀접한 상호적 관계에 놓여 있다. 이론밖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 어떤 이론의 옳고 그름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제공해줄 수 있는 사실의 세계는 엄밀하게 말해서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인간은 제한된 인식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모든 사실의 총체(totality)를 동시에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분석할 능력이 없다. 우리는 특정 사실을 선택하여 그 상관관계를 분석하교 연구할 수밖에 없고 그 선택과 분석의 배경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이론이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모든 이론에는 일정한 윤리적 관점이 내재될 수밖에 없다.
이 점을 수용하지 못하면 자신이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채택한 이론을 통해 파악한 사실관계를 객관적 사실로 절대화하게 된다. 그리고 그 사실의 이름으로 그 사실을 공격하는 어떤 이론도 너무 쉽게 거부하게 된다. 노무현 대통령도 바로 그 함정에 빠진 것이다. 그가 ‘현실과 사실’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상 그가 파악하고 있는 ‘현실과 사실’은 신자유주의 경제이론에 의해 파악된 사실일 뿐이다. 물론 그렇게 파악된 사실이 다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사실을 너무 절대화하게 될 때, 그 사실을 공격하는 듯한 이론들을 너무 쉽게 사실의 이름으로 배격하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론과 사실의 밀접한 상호관계를 제대로 이해하고 수용할 할 때 비로소 어떤 이론이 사실을 가장 잘 설명해주고 있는가를 판단할 수 있는 기본자세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약자의 관점에서 이론의 틀을 세우고 그 기초 위에 최대한 과학적 역량을 발휘하여 경제현실을 분석한 결과를 우선적으로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강자의 관점에서 분석한 결과를 놓고 종합적으로 판단을 내려야 한다. 그럼 이제 약자의 관점에서 본 한미FTA의 문제점에 주목해보자. (계속)
박득훈/ 언덕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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